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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Glenn Carstens-Peters

Minister's Column

목사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은혜로운 글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우물가에 온 시간은… (요 4장)

배성진 목사님

2020년 9월 5일

남편이 다섯 번이나 바뀐 수가성 여인이 우물에 물 길러 온 시간은 몇 시인가? 낮 12시인가?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의 의견대로 자신의 수치를 감추려 남들과 마주치지 않을 시간에 물을 길러 왔을까? 그러다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일까?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4:6). 유대인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시작되니 “여섯 시”를 유대 시간법으로 해석한다면 ‘낮 12시’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요한복음 저자는 유대 시간법을 사용했을까? 로마 시간법을 사용해서 저녁 6시를 의미한 것은 아닐까? 로마 시간법은 현재 우리 시간표와 같아서 “여섯 시”는 ‘새벽 6시’이거나 ‘저녁 6시’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수가성 여인이 우물가에 온 시간은 낮 12시가 아니라 저녁 6시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요한복음은 로마 시간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한복음 독자는 유대인 문화를 잘 모르는 이방인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저자는 독자가 유대인이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을 설명한다. 가령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에 나오는 돌항아리가 “유대인의 정결예식”(요2:6)을 위한 것이라고 유대인이라면 다 알기에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굳이 설명한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할 때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라고 유대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을 굳이 설명한다. 유대인의 명절을 말할 때도 굳이 “유대인의 유월절”(요2:13, 6:4)이라고 하며, 초막절도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요7:2)이라고 굳이 말한다. 이런 점은 유대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저자가 복음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법도 이방인에게 익숙한 로마 시간법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 서신 시간은 “제 육시”다(요19:14). 유대인 시간법으로 본다면 낮 12시인데,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법정에 선 것은 새벽이다 (막15:1). 그렇다면 요한복음의 “제 육시”는 로마 시간법에 의한 시간으로 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예수님이 우물가에 오셨을 때 피곤하셨다. 낮12시보다는 저녁 6시에 피곤한 것이 더 맞지 않을까? 게다가 오전 걸음 보다는 하루 종일 걸음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수가성까지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제자들이 스승을 혼자 두고 동네에 음식을 구하러 갔는데 아직 가야하는 일정이 남은 점심보다는 저녁 식사를 구하러 간 것이 더 맞지 않을까? 그러기에 요한복음 4장의 “여섯 시”는 로마 시간법에 의해 저녁 6시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더욱이 수가성 여자가 굳이 뜨거운 낮에 우물에 올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수가성 여자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낮12시에 물을 길러 왔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 여자는 과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의도가 있었을까? 예수님이 선지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여자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의 말을 통해 예수님을 믿었다. 동네 사람들이 이 여자의 말을 신뢰한 것을 보면 서로 피하는 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 최소한 불편하지 않은 관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저녁 6시 쯤에 수가성에 도착했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제자들은 동네로 나갔고, 예수님은 하루 종일 걷느라 피곤해서 우물가에 계셨는데, 마침 수가성 여자는 저녁 6시에 우물에 와서 주님을 만난 것이다. 수가성 여자가 피하려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뜨거운 햇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