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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게도냐에 재방문한 바울

성경 권명

사도행전

​성경 장

20

내용 개요

본장에는 바울이 그 동안 전도한 교회들을 두루 다니면서 그들을 권면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본장에서 바울은 아시아에서의 마지막 체류지였던 밀레도에서 고별 설교를 통하여 자신이 세계 선교를 위한 전도자로서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 희생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역설함으로, 후세대를 위한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바울을 위대한 전도자와 능력자로 묘사하는 것 외에도 본장에서는 특별히 교회 지도자로서의 바울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마게도냐 사역(1-6절), 드로아 사역과 유두고를 살림(7-12절), 드로아를 떠남(13-16절), 바울의 고별 설교(17-35절), 바울을 전송함(36-3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해

누가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을 간략하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오랜 사역을 마치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이곳 뿐만 아니라 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 석 달을 머물면서 로마서를 쓰기도 했습니나. 드로아와 밀레도에서의 설교는 바울의 전도자로서의 마음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1. 바울의 에베소 작별

1) 마게도냐와 그리이스
바울은 여러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마게도냐에서의 바울의 모습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육체적인 어려움과 안팎으로 당하는 많은 환난과 다툼으로 인해 많은 두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기 전에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소식 듣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고 계속 여행해서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염려한 대로 많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써서 디도편으로 보냈습니다. 디도가 고린도후서를 가지고 고린도로 떠난 후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에서 그 해 가을과 겨울을 지낸 것 같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여 거기서 석 달을 머물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머물면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의 장래 계획에 대한 약간의 자료를 제공해 줍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에서 복음 전하기를 갈망해 왔습니다. 그는 또한 서바나로 가는 그의 장기적인 복음 전도 계획의 전진 기지로 로마를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그 계획이 성취되지 못하고 막혀 있었습니다.
·바울의 고난(딤후3:11)

2) 유대인들의 음모
애당초 바울의 계획은 분명히 겐그레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유대로 항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생명을 노리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고서, 그와 누가는 이 항로를 취소하고 다른 항구에서 항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동료들은 겐그레아에서 드로아를 향해 출항해서 거기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음모의 원인(마27:18)

3) 바울의 동행인들
누가는 바울과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을 일곱 사람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교회의 대표들로서 바울이 늘 관심을 두었던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운반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의 동행에서 세 사람은 마게도냐에서 왔고(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넷은 소아미아에서 왔습니다(가이오, 두기고, 디모데, 드로비모). 이들은 바울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 곳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누가는 육로로 북쪽을 향해 빌립보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드로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바울은 닷새 만에 드로아에 이르러서 동료들과 함께 만나 이레를 머물렀습니다.
a. 소시바더(롬16:21)
b. 드로비모(딤후4:20)

2. 드로아에서의 설교

1) 드로아의 교회
드로아에는 교회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본문의 청중들이 바울과 함께 항해할 일행들이었다면, 그처럼 깊은 밤까지 강론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로아 교회는 아마도 사울이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고후2:12). 드로아에 갔을 당시 바울은 심령이 편치 못한 일이 있었지만, 잠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졌었습디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후 다시 그 곳에 갔을 때 거기서 만난 제자들을 보고서 이전 그의 전도의 열매가 나타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말씀 전파(눅9:2)

2) 바울의 설교와 유두고
바울은 드로아에서 지체하며 유대로 갈 적당한 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드로다에 머물렀던 마지막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동행들은 그날 저녁 드로아의 교인들과 함께 떡을 떼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지역의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아마 마지막으로 바울과 지내게 될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긴 강론을 경청했습니다. 그때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졸음 때문에 삼 층 누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 몸을 끌어안자 생명이 돌아왔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음은 물론입니다.
a. 주일(고전16:2)
b. 떡을 뗌(행2:42)

3. 밀레도에서의 바울의 고별 설교

1) 앗소에서 밀레도로
분명히 바울은 원래 계획보다 드로아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지연됨을 보충하기 위해 그는 나머지 일행들을 미리 보내고 자신은 육로를 통해 앗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앗소에서 미둘레네, 기오 그리고 밀레도로 배를 타고 갔습니다. 바울은 가능하면 오순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서둘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를 거치지 않고 밀레토에 이른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그 곳에로 오게 했습니다.
a. 오순절(민28:26)
b. 장로(딤전4:14)

2) 밀레도에서의 바울
바울의 전갈을 받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은 바울을 보고 싶은 간절한 일념으로 밀레도로 달려왔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목회에 필요한 권고를 했습니다. 바울의 설교 처음 부분은 바울이 에베소에서의 자기 생활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그가 에베소에서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책임은 바울에게서 그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자기가 가려고 하는 예루살렘에 환난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주신 사명을 마쳐야 한다는 단호한 결심을 보이게 됩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그를 본받아서 계속 교회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함을 권고했습니다. 바울은 장차 교회 밖에서 원수들의 공격과 교회 안에서 거짓 교사들의 해악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그들의 지혜와 정성이 필요함을 상기시키며 그들과 교회를 은혜의 말씀에 부탁했습니다.
·사명 전수(딤전5:21)

결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이 새 신자들에게 쏟던 관심과 그가 교회를 위해 일했던 정신을 본받아야 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과 하나님 나라를 전파,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였음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그가 하나님 앞에 드렸던 고백을 연상케 합니다. 과연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게 합니다.

단어 해설

2절. 이르러. 복음의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곳에 도착하는 것을 말한다.

16절. 작정하였으니.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작정한 상태를 말한다.

23절. 결박.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바울의 고난을 뜻한다.

24절. 생명을. 원어 <yuch;n:프쉬켄>은 '생명, 영혼'을 뜻하며 몸의 지체들을 주관하며 호흡할 때 표현되는 생명력을 가리킨다.

28절. 양 떼.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공동체의 일원을 뜻한다.

29절. 흉악한. '무거운, 잔인한'이라는 뜻으로 율법과 관련하여 강압적인 의미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32절. 부탁하노니. '곁에 두다, 바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바울이 교회를 주께 맡겼음을 나타내고 있다.

35절. 기억하여야. 신앙을 변치 말고 지셔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학 주제

죽은 유두고를 살림. 본장에 기록된 죽은 유두고를 살린 기사는 구약의 전승과 더불어 예수의 전승과 병행을 이루고 있으며 나아가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바울이 죽은 유두고 위에 엎드려서 살려낸 이야기는 엘리사가 그와 똑같은 행동을 취하여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를 상기시키고 있으며,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죽은 아이를 살려 내는 이야기와 병행을 이룬다. 또한 이 이적은 예수께서 누가복음에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낸 이적과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사를 연상케 한다. 구약 성경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했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똑같은 일을 행하심으로 구약 성경과 맥락을 같이했고, 바울 역시 성령의 힘을 입어 역시 같은 일을 행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장의 이적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 사가 구약 시대부터 사도 시대까지 계속적으로 계승되어 왔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적 교훈

바울은 장로들이 신자들을 돌볼 때 자신을 본받아 물질적인 보답을 생각지 말고 값없이 헌신할 것을 당부하였다. 더 나아가 오히려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가르쳤다(참조, 눅6:38). 복음 전도자로서의 바울의 삶은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예수를 전적으로 따르는 삶이었듯이, 성도들은 바울을 본받아 복음을 위하셔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