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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시대의 풍경

성경 권명

이사야

​성경 장

32

내용 개요

본장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원하실 메시야가 임재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메시야를 통해 선민들은 공의와 평화의 시대를 살아 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참예하는 자들은 영적인 무지를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실제로 보게 될 것이다(1-8절).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의 심판을 부녀자들에게도 들려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땅이 침략을 당하면 여자들이 가장 슬퍼할 것임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9-14절). 이후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면 그 땅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땅의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심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의로 그 땅을 영원 히 통치하실 것이다(15-20절).

강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심판을 말하다가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복을 언급할 때 그의 예언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라는 사실에 국한시키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는 영적 의미와 접목시켜 이중적으로 곧잘 예언합니다. 본장도 일차적으로는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말하나 그것은 영적으로 회복될 메시야 왕국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1. 의인의 통치

1) 공평에 의한 다스림
이 세상은 불공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힘이 센 자는 약한 자를 억압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으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압제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돈의 힘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홀대합니다. 그들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습니다. 이 세상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정의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배할 때에는 공평과 의로만 다스리십니다. 메시야는 오직 인간의 생명과 존재의 존귀성, 인품을 중시하고 그것에 따라 다스리십니다.
a. 공평함을 살피시는 주의 눈(시17:2)
b. 공평으로 하는 구속(사1:27)

2) 지혜자가 놓임을 받음
지혜자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사물의 흐름을 파악하고 순리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관점에서 인정되는 지혜자라 할지라도 세상은 그를 반드시 높이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먼저 자신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정 합니다. 그리고 유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그를 이용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제거하려 합니다. 역사 속에서 지혜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매장된 것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하지만 메시야는 그런 부조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메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자를 높이십니다.
a. 영광을 얻은 지혜자(잠3:35)
b. 지혜자가 빛남(단12:3)

3) 어리석은 자가 낮아짐
어리석은 자란 불의로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이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자들도 권력과 돈을 가지면 높임을 받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시작과 과정과 종말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오직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무뢰한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그들을 높입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본질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그들을 낮추십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실체를 보게 만드십니다.
a. 죄악으로 낮아짐(시106:43)
b. 높은 눈이 자가 낮아짐(사2:11)

2. 악인의 슬픔

1) 안일한 부녀, 염려 없는 딸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평강과 풍요를 추구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평강과 안위를 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는 날 그들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그 속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심판이 눈앞에 있음에도 이제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참조, 눅12:13-21). 이들은 그렇게 해서 안일에 빠지고 염려하지 않기 때문에 본문은 그들을 안일한 부녀, 염려 없는 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a. 무익한 재물(잠11:4)
b. 어리석은 부자의 안일(눅12:19)

2) 빼앗김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순간에 사라져 없어져 버릴 수 있는 유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존재를 유지할 수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그것을 의지합니다. 마치 그것들이 영원히 그들을 유지시켜 주고 보호해 주고 지탱시켜 줄 것인양 그것들을 의뢰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말했듯이 유한한 것이며 일시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때가 이르면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주지 아니하시고 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빼앗김 속에서 허무를 맛볼 것입니다.
a. 빼앗김(겔26:12)
b. 상실(마25:28)

3) 슬픔과 고통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만으로는 존재를 유지할 수도, 존재를 화장 할 수도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도구가 있어야 물건을 만들고 의사를 소통하여 빨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인간이 모든 것을 잃는다면 그는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마침내는 끝내 슬픔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지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십니다. 결국 악인은 안일하고 염려하지 않다가 모든 것을 잃고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a. 슬피 욺(사38:14)
b. 고통하는때(딤후3:1)

3. 평강과 풍요

1) 악인의 사라짐으로 인한 안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구원을 얻은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삶의 고통을 여전히 겪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악인들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공존하며 그들을 미워하고 미혹하며 학대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라지는 날 백성들은 완전히 해방되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더 이상의 위협과 미혹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a. 사망이 없음(계21:4)
b. 밤이 없음(계22:5)

2) 사랑으로 인한 평강
모든 악과 악인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남는 것은 사랑입니다. 모두가 다 서로를 염려하고 서로를 격려합니다. 칭찬합니다. 아무도 다른 이를 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공여합니다.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인한 평강과 안위뿐입니다. 참으로 사랑보다 더 큰 위안과 평화는 없습니다. 그 사랑이 메시야 왕국에 넘치기 때문에 그 곳에는 평강이 넘칩니다.
a. 평강의 왕(히7:2)
b. 동거(계21:3)

3) 축복으로 인한 풍요
메시야 왕국은 인간의 노동에 의한 필요 물품의 공급이 없습니다. 마치 범죄하기 이전 시대에 아담이 노동하지 아니하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았듯이 메시야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에는 불완전한 것이 없고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오직 넘침과 완전함이 있을 뿐입니다. 넘침과 완전함이 가져다 주는 것은 풍요로 인한 만족감과 행복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만족감과 행복감에 도취되어 살 것입니다.
a. 풍요(겔47:12)
b. 풍성(엡2:7)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시는 나라는 결코 굽어짐이 없습니다. 어두움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하에서 공평하게 처리됩니다. 하나님을 경외 한 자는 들림을 입고 그에게 순종한 자는 높임을 받습니다. 남을 사랑한 이들은 큰 상급을 받습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모든 자들은 가진 것도 빼앗기고 멸망에 이릅니다. 우리는 전자에 속하여 그 나라의 평강과 풍요를 소유하여야 하겠습니다.

단어 해설

1절. 의로. 원어 <qd<x,:체데크>는 '공의롭다, 의롭다'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윤리적, 도덕적 규범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의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입증하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5절. 어리석은자. 비천하고 매우 버릇 없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께 대해 무관심하고 영적으로 고갈된 사람을 가리킨다.

11절. 드러내고. 발가벗다는 뜻으로 행악한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임을 가리킨다.

14절. 굴혈. 일시적인 거처, 긴급할 때의 대피처 또는 매장지로 사용되는 곳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누리던 평화가 끝나고 죄악으로 인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땅이 폐허가 될 것을 말한다.

신학 주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의 구원이 이를 때에 누리게 되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본장은 주제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인간이 가져다 주는 것과 달리 영원함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 축복은 하나님의 거룩 한 속성인 공의와 그 결과로서의 화평과 평안이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를 언급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임하는 그 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지 않았다 할지라도 다시 인간의 풍요한 삶이 만들어지며 하나님의 공의가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이미 하나 님께서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과 복된 삶을 허락하셨다(참조, 창1:28).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거부한 것은 인간 자신이었다. 그 후 인간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다시금 인간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얻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의 말씀을 통하여 시작이 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율법을 통하여 구체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죄로 눈과 귀가 어두워진 백성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아니하며 단지 개인의 무지한 소견대로 행동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에는 거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죄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복을 받은 선민인 이스라엘과 유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구원의 반열에 들어설 수가 없는 것이 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신의 백성들의 상태를 아시고 계속적인 축복의 말씀으로 구원의 자리에 초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상태는 유다의 모든 추악한 죄도 씻어 버리는 공의와 화평의 상태인 것이다.

영적 교훈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 언약을 체결하시고 또한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시지만, 그 심판은 택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증표가 되며 택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통해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살아갈 때에 확실한 축복과 영광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