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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이스라엘

성경 권명

열왕기하

​성경 장

15

내용 개요

본장은 유다 왕 웃시야(아사랴)의 재위 기간인 52년 동안에, 내부 혼란으로 인해 다섯 왕이 교체되는 이스라엘의 파란 만장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아사랴의 행적과(1-7절), 스가랴의 행적(8-12절), 그리고 살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13-16절). 이어 므나헴의 행적과(17-22절), 브가히야의 행적(23-26절), 베가의 행적(27-31절) 및 요담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32-38절). 이와 같이 본장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의 통치 기간이 대단히 대조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를 통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 없을 때에는 어떠한 부귀와 권력도 결국은 비극이 될 뿐이며, 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준엄하게 내려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강해

여로보암 2세가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은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 이후의 통치자들의 지도력 부재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혁명은 이스라엘 왕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멸망의 그늘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 왕조를 계승하는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상황이 호전되어 갔습니다.

1. 아사랴의 유다 통치

1) 아사랴의 즉위
유다는 아마샤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27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샤는 '웃시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부터 시작하여 총 52년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a. 아사랴의 즉위(대하26:3-4)
b. 아마샤의 살해(왕하14:19)

2) 문둥병에 걸린 아사랴
아사랴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참조, 대하26:16-21). 결국 그는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사랴는 자신의 교만한 행위로 평생을 탄식 속에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문둥병으로 인해 나라는 그의 아들인 요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a. 아사랴의 교만(대하26:16)
b. 부정한 병인 문둥병(레13:46)

3) 아사랴의 죽음
문둥병으로 후회와 탄식 속에 살던 아사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사랴는 유다의 왕들 중 많은 업적을 지닌 영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하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엘랏을 건축하고 암몬 족속에게는 조공을 받았으며 블fp셋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군대를 재조직하고, 여러 지역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 뒤에는 이웃 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도 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제사장의 사역에까지도 손을 댄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말년에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a. 별궁에 홀로 살았던 아사랴(대하26:21)
b.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함(대하26:23)

2. 몰락하는 이스라엘

1) 스가랴와 살룸의 통치
여로보암 2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스가랴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상들 처럼 우상 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 동안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 왕조가 4대 만에 끝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왕하10:30).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결국은 한 달 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므나헴은 왕으로 즉위한 후 디르사와 사마리아 근처의 딥사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그 곳 사람들이 므나헴을 왕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므나헴은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형벌이 내리는지 본을 보이기 위해 임신한 부녀자들까지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a.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7:9)
b. 예후 왕조에 대한 예언(왕하10:30)

2)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통치
므나헴은 유다 왕 아사랴 39년에 왕이 되어 10년 동안 악한 통치를 하였습니다. 그의 배교 행위는 조상들 못지않게 악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앗수르의 강력한 지도자들 중에 한 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불'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각각 은 오십 세겔씩을 토색하여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 대가로 므나헴은 왕위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므나헴은 죽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하였는데, 그 역시도 우상 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브가히야는 50명의 병사를 이끌고 온 베가에 의해 왕궁 호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왕자인 아르곱과 아리도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베가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 앗수르 왕 불의 공격(대상5:26)
b. 왕궁 호위소에서의 죽음(왕상16:18)

3) 베가의 통치
베가가 즉위하던 때는 유다 왕 아사랴가 52년째 통치하던 해였습니다. 그도 선왕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일들을 계속 행했습니다. 베가는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이용한 세금 제도 등을 비방하면서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는 곧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공격을 야기시켰습니다. 앗수르 왕은 많은 땅을 빼앗았고, 또한 백성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이러한 패배로 인해 호세아는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이 될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물론 호세아는 앗수르에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a. 디글랏빌레셀 왕(대하28:20)
b. 아벨 벳마아가(삼하20:14-15)

3. 요담의 유다 통치

1) 요담의 즉위
유다는 아사랴(웃시야)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2년째 베가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요담은 선한 왕으로 16년간을 통치했으나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요담은 특별히 성전의 윗문을 개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요담이 계획한 건축과 암몬 족속의 정복은 대하27::3-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 요담의 즉위(대하27:1)
b. 성전 윗문의 건축(대하27:3)

2) 요담의 죽음
요담이 유다를 다스릴 때 이스라엘은 베가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의 국제 정세는 앗수르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람 왕 르신과 협약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동참을 강요하기 위해 르신과 연합하여 요담이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요담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 조상 다윗 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담을 이어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 아람 왕 르신(왕하16:5)
b. 르신과 베가(사7:1)

결론
이스라엘의 왕조는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해지고, 주변 강대국들 특히 앗수르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 왕들을 언급할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왕들도 여호와 앞에서 선하게 나라를 다스렸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도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단어 해설

1절. 아사랴. 남왕국 유다의 제10대 왕. B.C.791-739년까지 통치하였으며 '웃시야'로 더 잘 알려짐.

4절. 산당. 원래는 '높은 곳'을 뜻. 즉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산꼭대기에 제단을 만들어 놓은 곳.

5절. 문둥이. 율법이 정한 부정한 자로 사회에서 격리되고 예배에도 참석할 수 없었음.

16절. 딥사. 이스라엘의 동북에 위치한 성읍. 고대의 중요한 통상로로 중요한 나루터였음.

신학 주제

아사랴의 생애가 주는 교훈.
아사랴의 생애도 하나님과 동행한 그의 전기와, 자기의 뜻대로 교만을 부리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쓸쓸한 생을 보낸 그의 후기로 구분된다. 아사랴는 16세에 통치를 시작하여 52년 동안 유다의 왕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고 하나님께 국가의 안전과 평안을 열심히 구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을 잘 따름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산당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팔년은 그가 지금까지 행동했던 초기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는 세상적인 위엄과 권력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어서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였다. 그래서 그 대가로 문둥병이라는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인간은 본성상 이와 같은 교만의 죄에 빠질 수 있는 존재임이 여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영적 교훈

산당의 제사는 아달랴의 악정으로 성전의 제사가 마비되자 기정 사실화되었다. 본문에서 아사랴 왕이 드렸던 제사도 바로 그런 산당의 제사였다. 이를 성경에서는 거듭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제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된다. 산당 제사는 인간의 편의주의적 예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 또한 빠지기 쉬운 편의주의적 예배에서 속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