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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굳게 지키라

성경 권명

히브리서

​성경 장

6

내용 개요

히브리서 기자는 연약한 신앙의 초보에 머무르지 말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것을 권면한다. 한편으로는 배교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1-8절).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자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한 다음에 자신의 독자들에게 구원에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과 소망 중에 인내하라는 격려의 말을 해준다(9-12절). 히브리서 기자는 소망과 인내의 모범으로서 아브라함의 예를 든다. 그리고 예수께서 델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서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13-20절).

강해

본장은 전장 후반부에서 언급된 신앙상의 권면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성장과 진보를 위하여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헛된 교훈에 미혹된 배도자의 결국에 관해 경고하였습니다. 동시에 게으르지 말고 오래 참음으로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함을 촉구하였습니다.

1. 초보를 벗어나서 성숙하라

1)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라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위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믿음의 위인들은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확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믿음이라는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수정 보완하는 노력을 계속해야만 성숙할 수 있습니다.
a. 어릴 때 신앙을 버려야 함(고전13:11)
b. 완전한 데 나아가야 함(히6:2)

2) 완전한 데 나아가라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의 완전을 추구하도록 권면하면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단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표리가 부동한 생활이나 외식주의, 형식주의를 가증히 여기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에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것들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주의 뜻을 알지 못하고 주를 경외함이 없는 사람들이 외식주의자가 되는 법입니다. 주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요란스러운 겉치레가 아니라 꾸밈 없는 믿음과 순종하는 생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a. 하늘의 은사를 맛볼 수 있음(히6:4)
b. 내세의 능력을 맛볼 수 있음(히6:5)

3)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자
히브리서는 신앙의 정지 상태 또는 후퇴 현상에 빠진 유대인 성도에게 영적 성장을 권면하는 것이 그 저술의 목적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경우 초래되는 무서운 결과를 들어 경계하고 있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체험을 하고도 타락하는 자는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하늘의 평안을 맛보고도 타락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의 상태로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a. 다시 세상의 더러움에 얽매인 자들(벧후2:20)
b. 맛을 잃은 소금 같은 자들(마5:13)

2. 복된 믿음

1) 하나님의 복을 얻을 자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였습니다. 비를 흡수하는 땅이 우리의 마음을 가리킨다면 밭가는 자들은 밭의 주인으로서 우리 영혼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해야 합니다.
a.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 주시는 하나님(시65:9)
b. 성도에게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요15:1-2)

2)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
히브리서 기자는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는 밭은 없습니다. 비를 자주 흡수하지 못하는 땅이라고 할지라도 가시와 엉겅퀴는 자라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이든지 아니면 저주를 받은 사람에 속하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받지 않는다면 오직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저주와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유용하게 쓰실 수 있는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a. 가시떨기로 비유된 타락자의 마음(마13:22)
b.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짐(계20:15)

3) 믿음을 굳게 지키라
믿음은 막연한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위적인 감정이나 지적 동의도 아닙니다. 믿음은 환경이나 결과에 구애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인은 오로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우리가 만들어 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말씀으로 계시하신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수신자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a. 신앙 정진에 더욱 힘써야 함(벧후1:5)
b. 영구한 산업이 기다리고 있음(히10:34)

3. 아브라함의 신앙과 그리스도

1) 아브라함의 신앙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큰 자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부족하지 아니하고 차고 넘쳐 나는 완전한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복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과 신앙을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a.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신 축복(창15:1)
b.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믿었음(롬4:18)

2) 하나님의 맹세
창조주 되시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누구의 지배를 받거나 누구의 자문이나 판정에 의존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자신이 법이시고 선이시며 또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독립적으로 임의대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에게 맹세하시고 보증까지 하신 이유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 즉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인 성도들을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안위를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맹세하시고 보증하셨는데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입니다.
a. 거짓말하지 않으심(히6:18)
b.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심(히6:13)

3)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악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용서를 비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제사장들과는 달리 그 크신 사랑으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시어 단번에 우리 모든 사람의 죄악을 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이면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a. 우리의 죄를 구속하심(히2:17)
b.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임(히5:9)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헛된 가르침에 미혹된 자들의 결국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 일과 타성과 교만에 얽매여서 성장하지 못하는 믿음의 요인들을 철저히 제거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 성장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어 해설

1절. 버리고. '보내 버리다, 이혼하다'라는 뜻으로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거나 큰 소리를 지를 때, 또는 법적으로 헤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4절. 맛보고. '알게되다, 경험하다'라는 의미로 사람의 정신 활동인 인식하고 깨닫고 알게 되는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8절. 가시. '가시나무'를 가리키며, 성경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성도들의 잘못된 행동을 의미한다.

11절. 풍성함. '확신, 충만'이라는 뜻으로 정신적으로 풍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

16절. 확정이니라. 사캄을 굳세게 만들거나 마음을 든든히 가질 때를 나타낸다.

19절. 휘장.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간막이 휘장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다.

신학 주제

제2의 회개에 관한 문제. 6절의 타락한 자들은 제2의 회개가 없다는 경호의 말씀은 신학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양심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본문이 굉장히 무거운 짐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늘 죄를 짓고 늘 회개를 새롭게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본문이 심각한 문제이다.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완전히 버리는 의미에서 타락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의 상황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인 유대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상황이었다. 신앙을 버린다는 것은 복음의 가장 원초적인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10:26-29의 말씀이 본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하나님의 아 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씨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은 매우 크다. 이러한 히10:26-29의 내용은 6절의 완전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락한다는 말은 신앙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에만 적용이 된다. 그러한 자에게는 제2의 회개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문제가 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 완전히 신앙을 거부하고 예수를 저주하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던 자들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자들에게 제2의 회개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가끔 회개하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논리적인 체계에 의해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이는 예정론적인 확언과 자유 의지적인 결단의 논리적 부조화와 관련된 문제이다. 건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견인과 하나님의 경고를 겸비하는 믿음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수 없다. 본장 역시 6절에서는 경고가 나오지만 이어지는 9절에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나온다. 양자의 적절한 긴장과 조화 가운데서 이해 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완전히 버리려는 자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고를 위해서 가장 큰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혹자는 이 본문을 두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한다. 믿음을 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갔다가 5년 만에 기독교로 되돌아온 성도가 있다면 히브리서 기자는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잘 돌아왔다고 환영할 것이다.

영적 교훈

우리는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는 엄중한 말씀을 대할 때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너희는 구원에 가까이 있다는 말씀(9절)을 기억하고 위로와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