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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성경 권명

요한계시록

​성경 장

19

내용 개요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리니 이는 하나님의 바벨론 심판을 찬양하는 찬송이었다(1-5절). 이제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된다. 성도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주께 경배를 드린다(6-10절). 그리고 백마를 탄 자가 만국을 치며 철 장으로 다스리며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였다. 그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다(11-16절). 한 천사가 짐승의 세력의 멸망을 선포한다. 그리고 짐승과 땅의 왕들이 백마 탄 자와 전쟁을 일으켰으나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잡혀서 산 채로 유황불의 못에 던져졌고, 나머지는 죽었다(17-21절).

강해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으로 길고 지루하게 묘사되던 대환난은 드디어 종식되었고, 최후의 심판을 위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습니다. 본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진노가 그 절정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 하늘에서 들리는 기쁨의 찬양 소리

1) 바벨론에 내린 심판에 대한 찬양
바벨론의 멸망이 있은 후에 요한이 들으니 하늘에서 허다한 무리의 찬송이 있었습니다. 이 찬양은 바벨론에 내린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대해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시는 분으로 사람의 행동 뿐만 아니라 생각과 의도까지 아시고 지혜를 가지고 계시기에 공정한 판단을 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늘의 허다한 무리들은 바로 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막내려진 큰 환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화답하여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도 엎드려 아멘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보좌에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음성이 나서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여기서는 모든 하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루야를 높이 외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쁜 연합 찬양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공동체에도 꼭 필요합니다.
a.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함(시150:1,6)
b.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심(계15:3)

2) 어린양의 혼인 잔치
이어서 하늘에서 들리는 찬양 가운데 어린양의 혼인 간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연합을 말합니다. 이 혼인 잔치 때에는 성도들이 하늘로 들어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교회를 혼인 관계로 묘사하는 것은 구약 때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친히 신랑으로 비유하시며,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부부로 비유하는 것은 사도 바울에게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 잔치를 위해 자신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선한 행위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의 의로운 행실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계19:8). 그리스도는 우리의 충성에 따라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아무 공로 없이 구원 얻은 데 감사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삶 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a. 예수는 신랑이심(막2:19)
b.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부부 관계(엡5:22-24)
c. 어린양의 혼인 잔치 때 성도들이 하늘로 올려져 주님을 영접함(살전4:16)

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1)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요한은 드디어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백마 탄 자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재림주로 불신 세상을 심판하고 짐승을 완전히 멸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초림하실 때와는 달리 재림 때에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을 요한은 볼 수 있었습니다. 재림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정복자로서 모든 원수들을 쳐부수는 분이었습니다. 또한 충신과 진실이 라는 이름으로 오신 신실하고 거짓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리스도는 공의로 운 심판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럽고 신실하며 공의로운 심판주의 모습으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이제 더 이상 은혜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의로운 심판과 승리의 나팔을 불기 위해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한 몸에 받기 위해 오신 괴로움의 초림 때와는 또 다르게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아 짜기 위해 재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재림
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늘도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a.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승리하심(계17:14)
b.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오심(계14:14)

2) 짐승의 군대와의 접전
계속하여 요한은 땅에 임할 심판을 고하는 천사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함에 온 군대를 이끌고 짐승과 그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벌여 짐승의 군대를 멸망시키는 모습의 환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같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사단의 세력과 벌이는 최후의 전쟁은 계16장에서도 언급된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때에 그리스도는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고 심판받을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특히 그 불신자들은 이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 넣어질 것입니다. 또 땅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으로 죽음을 당해 새들에게 그 시체를 뜯기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든 새들이 배부르게 먹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과 엄격함을 잘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를 대항하기 위해 모인 자들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앞의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짐승과 그 군대들이라고 표현된 것처럼 여기서도 장차 임하여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이라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합니다.
a. 짐승은 지상 권력을 대표하며 교회를 탄압함(계13:1)
b. 무저갱은 사단을 가두는 일시적 처소(계20:1)
c. 불과 유황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도구(겔38:22)
d. 유황불 붙는 못은 지옥을 가리킴(계20:10)

결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죄악에서 구하기 위해 초림하셨듯이 이 세상의 불의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언제 오시는지 그때를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모든 징조들이 이룬 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이 재림루를 기다리면서 오늘도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충성되이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어 해설

4절. 보좌. 원래는 등받침과 팔받침, 발등상을 갖춘 높은 의자를 가리키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높으신 위엄을 강조하는 말이다.

12절. 불꽃. 원어 <purov":퓌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통찰력과 그에 따른 악인에 대한 보응을 함께 묘사한다.

14절. 백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심판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9절. 전쟁. 원어 <povlemo":폴레모스>는 군사 용어인데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와 사단의 세력간에 있을 영적 전투를 가리킨다.

신학 주제

어린양의 혼인 잔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베풀어지는 큰 잔치를 말한다. 구속받은 온 성도들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세대주의자들은 공중 휴거한 자들만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본문 어디에서도 그러한 암시를 발견할 수 없다. 또한, 본장에 의하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기약이 이르렀다고 했을 뿐이고 지금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에 온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는 잔치이다. 한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는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다(8절). 여기서 옳은 행실이란 율법적인 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믿음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하나님의 은하에 대한 성도들의 마땅한 반응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옳다. 이것은 이신칭의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는 놀라운 선언까지 하였다(참조, 약2:24). 이러한 믿음과 행함의 문제에 대해서 위대한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믿음뿐이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혼자가 아니라 항상 행함과 함께한다라고 말하였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자는 당연히 그 믿음에 합당한 행함이 있다. 만약 행함이 없다면 그런 믿음은 거짓 믿음인 것이다. 그러나 행함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행함을 통해서 그 사람의 믿음을 역추적할 수 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옳은 행실로 살아갈 때 비로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깨끗한 세마포를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영적 교훈

우리는 이신칭의의 참된 정신을 너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도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참조, 고전13:2). 예수님께서도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참조, 마7:23). 성경은 우리가 이신칭의의 원리를 오해할 것을 미리 알고 다양한 측면에서 행함을 강조해 두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받은 자의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은 그 자체로써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행함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