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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성경 권명

열왕기하

​성경 장

14

내용 개요

본장의 전반부에는 유다 왕 아마샤가 소개되는데, 그는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요아스에게 패하고 자기 신하들에게 피살되는 불우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후반부에 소개된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는 매우 강성한 국력을 소유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한 인물로 소개되어 비교적 관대한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아마샤의 초기 행적(1-7절),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8-14절), 그리고 요아스의 죽음(15-16절) 및, 아마샤의 최후와(17-22절), 여로보암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23-29절). 본장을 통해 국가의 흥망 성쇠는 오직 주의 섭리에 기인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변화자지도 주관하심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강해

이제 다시 유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요아스 왕이 있듯이 남유다에도 요아스 왕이 있는데, 이 왕의 아들이 아마샤였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달랴 통치 이후에 쇠퇴해졌던 국력을 어느 정도 신장시켰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1. 아마샤의 유다 통치

1) 아마샤의 즉위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지 1년 후에 아마샤는 유다의 9대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아마샤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아마샤는 선왕인 요아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 중에는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샤는 다윗 왕조의 시조이자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a. 아마샤의 즉위 (왕하12:21)
b. 산당에서 제사하는 백성들(왕하16:4)

2) 에돔과 전쟁을 한 아마샤
아마샤는 등극하자마자 자신의 부친인 요아스 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습니다. 이 신복은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를 가리킵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하자면 왕을 죽인 신복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들까지도 몰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그 신복들만 죽이고 자식들은 살려 두었습니다. 이는 아마샤가 모세의 율법을 실천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한편 아마샤는 에돔과 전쟁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25:5-16). 이 전쟁은 사해 계곡에서 발생했는데 아마샤가 대승하여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에돔의 수도인 셀라도 취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셀라를 욕드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성채 도시인 페트라였습니다.
a. 그 자식은 죽이지 말라(신24:16)
b. 염곡에서의 승리(삼하8:13)

2. 아마샤와 요아스의 싸움

1) 화를 자초한 아마샤의 교만
에돔과의 전쟁에저 승리한 아마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사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아합 이후로 이스라엘의 종속국 노릇을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아마샤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먼저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벧세메스에서 전쟁을 하였습는데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유다 군대는 후퇴하고, 아마샤는 생포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에서 많은 귀중품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사마리아에 끌려갔습니다. 결국 아마샤도 잡혀 갔기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a. 아마샤의 죄악(대하25:14)
b. 아마샤의 교만(대하25:19)

2) 요아스의 죽음
요아스의 죽음은 왕하13:12-13에 이어 또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었습니다. 이때에 포로로 잡혀 있었던 유다 왕 아마샤는 석방되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즉위하였습니다.
a.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하15:31)
b. 여로보암의 즉위(왕하13:13)

3) 아마샤의 죽음
유다는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고 크게 패하자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서 큰 혼란을 맞이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 가운데 일부 무리들은 아마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중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샤는 유다의 남부 국경에 있는 옛 수도 라기스까지 도망갔으나, 거기서 반란군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다윗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유다는 아마샤가 포로로 잡혔을 때부터 그의 아들 아사랴가 16세 나이로 통치하기 시작하다가 아마샤의 죽음 이후로는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아사랴는 오빌과의 무역을 위해 아카바 만에 엘랏을 건축하기도 합니다.
a. 라기스(수10:3)
b. 엘랏(왕하16:6)

3.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통치

1) 여로보암 2세의 즉위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때 유다는 아마샤가 15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전의 어떤 왕들보다도 장수한 왕으로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특별히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 즈음에 주변 강대국들은 어려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여로보암 2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여로보암이었으나, 그는 영적으로는 그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패자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왕들을 신앙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있었기에 여로보암 2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 2세의 41년간의 통치도 간단하게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a. 여로보암 2세의 즉위(왕하13:13)
b. 계속되는 여로보암의 죄악(왕하15:23-24)

2) 이스라엘을 부흥시킨 여로보암 2세
사실 이스라켈은 아람의 하사엘 왕 때부터 아람의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요아스 때부터 호전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여로보암 2세 때에 아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회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 시대에 확장되었던 영토들을 모두 복원시켜 북쪽 하맛 어귀에서부터 남쪽 아라바 바다까지 넓은 영토들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 요나 선지자에 의해 계시되었던 것입니다.
a. 요나 선지자(욘1:1)
b. 솔로몬 당시의 영토(왕상8:65)

3) 여로보암 2세의 죽음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 때에 아람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국력이 쇠퇴해진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한 앗수르도 북방 우라르트 민족의 계속되는 침략과 무능한 지도자로 인한 내부 갈등이 심화되어 국력이 약대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주변 강대국들의 약세를 틈타 여로보암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과 하맛을 침략하였습니다. 본래 이들 도시는 다윗과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 영토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밖에 여러 지역들을 되찾고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여로보암 2세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 다메섹을 회복한 일(삼하8:6)
b. 유다에 속했던 하맛(대하8:3)

결론
에돔에게 승리했다는 기쁨에서 비롯된 아마샤의 교만한 마음은 민족적인 재앙만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죽음만을 몰고 왔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의 지도자가 올바르게 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편 여로보암 2세의 업적에 관하여 간략하게 기록된 본문을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관점이 우리들과는 크게 다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단어 해설

1절. 아마샤. 남왕국 유다를 통치한 제9대 왕. 용감하고 지략이 있었으나 후에 우상을 숭배하는 패역을 저지름.

7절. 염곡. 사해 남단에 위치한 전쟁터로 이곳에서 다윗과 에돔이 싸웠음.

10절. 교만하였으니. 원어 <ac;n::나사>는 '들어올리다'라는 뜻. 즉 남에게 자신을 높이 보이려고 고개를 쳐들고 다님을 표현.

11절. 벧세메스. 유다 평지에 있던 성읍으로 단 지파가 정복하여 차지함.

16절. 사마리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로 아합 왕에 의해 수도로 지정되었으나 B.C.722년에 앗수르 왕에게 함락됨.

19절. 라기스.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교통의 중심지로 여겨졌음.

24절. 범죄케. '빗나가다, 상실하다, 죄 짓다'라는 뜻. 즉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나타냄.

신학 주제

아마샤의 현명한 행동.
본문에는 유다 왕 아마샤의 매우 현명한 행동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부왕을 죽인 신복들은 죽였으되 그 자식들까지는 죽이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요아스를 살해한 자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보복을 가했다. 그는 나라가 자신의 손에 굳게 서자 불의와 죄악에 대한 보복을 행했다.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범죄한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 전체도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사실 이러한 관습은 집단의 공동체적 성격을 공고히 해준다는 면에서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무죄한 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비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죄의 책임은 사회와 개인이 동시에 져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무죄한 자의 생명까지도 빼앗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관례나 인습으로 인해 죄 없는 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아마샤의 행동은 참으로 현명한 행동이었다.

영적 교훈

성도들은 자신의 삶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각자 자기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책임이 남에게까지 전가되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남의 잘못을 판단할 때도 범죄자와 그가 속한 집단 전체를 일반화시키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아서는 더욱 안 된다. 서로 판단하다가 서로에게 범죄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성도들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