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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귀환

성경 권명

사무엘하

​성경 장

14

내용 개요

요압이 그술로 도피한 압살롬을 지혜로 귀환시킨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이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간 압살롬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요압은 드고아 여인을 이용해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도록 도모하였다(1-11절). 드고아 여인의 청원을 들은 다윗은 그것이 요압이 꾸민 일임을 알고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하였다(12-24절).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이 년이 지나도록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가 요압에게 강권하여 부왕을 만나게 되고 부자간에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다(25-33절).

강해

다윗의 장자이었던 암논이 다말의 오마인 압살롬에게 살해되었습니다. 본장에는 이복 형인 암논을 살해하고 그술로 도피해 있던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고자 하는 요압의 처신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압의 의도대로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후일 다윗에게 크나큰 고난을 초래하는 반역의 시발점이 괴었습니다.

1. 요압의 계교와 드고아 여인

1) 드고아 여인을 부른 요압
다윗은 암논을 죽이고 도망한 압살롬 때문에 몹시 상심해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의 마음은 압살롬에게로 향하여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언제나 책략에 능한 요압은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압살롬과 화해를 시키기 위하여 술책을 썼습니다. 요압은 드고아의 슬기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명령을 내려 애도자로 가장시킨 다음 다윗 왕께 들어가 압살롬을 사면하도록 하는 계책을 꾸몄습니다. 즉 요압은 그녀에게 상복을 입히고 그 여인이 당한 억울한 사정을 다윗에게 아뢰게 하였는데, 그 억울한 사정이란 압살롬의 처지를 비유한 이야기였습니다.
a. 왕의 마음을 간파함(삼하14:1)
b.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 드고아(암1:1)

2) 왕 앞에 나아간 드고아 여인
요압으로부터 지시받은 드고아 여인은 왕께 나아가서 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왕이여 도우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그 슬기로운 여인은 참 과부의 복장을 하고 왕 앞에서 요압이 넣어 준 거짓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녀의 말은 다윗의 동정과 애정에 호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드고아 여인은 자신의 가정에서 떨어진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여인의 간구 속에는 형제를 죽인 그 아들의 죄는 큰 것이기에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인지라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a. 독자를 잃은 과부(눅7:12)
b. 상속자를 죽이려 함(마21:38)

3) 다윗의 의분과 맹세
드고아 여인은 다윗에게 논리 정연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여 형제를 죽인 범죄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게끔 유도하였습니다. 다윗은 과부인 이 여인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의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이 여인을 도와주겠다는 맹세를 하게 됩니다. 다윗의 맹세는 그 여인에게는 승리요, 다윗 자신에게는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 꼴이 되었습니다.
a. 원한을 호소한 과부(눅18:5)
b. 다윗이 안전을 보장함(삼하14:10)

2. 다윗을 책망하는 드고아 여인

1) 다윗의 처사를 책망함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케 하여 다윗으로부터 아들의 안전을 확약받은 여인은 이제 그가 찾아온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인은 겸손히 탄원하던 태도를 바꾸어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처사를 대담하게 책망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점진적으로 그 의미를 자신의 상황과 결부시키는 방법을 씁니다. 즉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 들을 잃어버린 과부이며, 다윗은 비록 범죄하였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그녀로부터 빼앗아 가고자 하는 엄격한 족속과 같다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손에 암논은 죽었지만 언젠가는 죽을 자가 죽은 것이며, 이제 압살롬을 죽인다고 해도 죽은 암논을 다시 살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a. 도망간 압살롬(삼하13:34)
b. 삼 년 동안 돌아오지 못함(삼하13:38)

2) 사실을 간파하는 다윗
다윗은 자기 앞에 나타난 드고아 여인이 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호소하면서 그 대화의 초점이 다윗 자신에게 맞추어지자 그것이 압살롬과의 화채를 위한 것임을 눈치 챘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반드시 이 여인의 뒤에서 사주한 인물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시에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를 아는 인물이 요압밖에 없다는 것을 안 다윗은 이 모든 것이 요압이 시킨 것이냐고 물어 보게 됩니다.
a. 자기의 행한 일(수7:19)
b. 요압의 사주(삼하14:2-3)

3) 솔직하게 고백하는 드고아 여인
이 모든 일이 요압의 계교였냐는 다윗 왕의 질문에 여인은 요압이 시켰음을 고백했습니다. 다윗 앞에 선 드고아 여인은 참으로 위대한 왕인 다윗에게도 인정받을 만큼 지혜롭고 정직한 여인이었습니다. 비록 요압의 사주를 받기는 하였어도 뛰어난 머리와 논리 정연하고 확신에 찬 언변으로 다윗을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림으로써 다윗에게 어느 정도 위로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여인의 행동이 모두 옳고 여인의 말 또한 모두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다윗이 압살롬을 부르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a.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헤아림(삼하14:1)
b. 압살롬을 그리워한 다윗(삼하13:39)

3.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압살롬

1) 압살롬를 데려오는 요압
드고아 여인의 화술에 의해 다윗은 압살롬을 데려올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다윗의 귀환 명령으로 요압의 책략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그술로 도망한 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참조, 삼하13:38). 살인을 행한 극악한 죄는 용서할 수 없었지만 아비로서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그리던 자식이 돌아왔지만 다윗은 그의 집으로 물러나 살게 하면서 압살롬을 대면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금지령을 내린 것은 중죄에 대한 처벌이라 할 수 있습니다.
a. 요압이 제시한 화해의 지혜를 받아들임(삼하14:20)
b. 압살롬이 돌아오게 됨(삼하14:23-24)

2) 왕을 만나기를 원하는 압살롬
압살롬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이 같은 가족 소개는 압살롬이 육체적으로도 장성한 자임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요압의 중재 역할과 다윗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압샅롬은 3년 간의 망명 생활에서 본국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자그만치 2년 동안이나 다윗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요압을 만나기 위해 애썼으나 그가 응하지 않자 그의 밭에 불을 놓았습니다.
a. 이태 동안 못 봄(삼하14:28)
b.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삼하18:18)

3) 왕과 대면하는 압살롬
압살롬에 의해 자기 밭에 불이 났음을 안 요압은 압살롬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압살롬은 방화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도리어 요압에게 책망하였습니다. 그술에서 잘 지내고 있는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해서 고생을 하게 만드냐는 원망을 하면서 다윗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러한 압살롬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드디어 기다리던 부자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자식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a. 재회할 때의 입맞춤(눅15:20)
b. 사랑의 표현(아1:2)

결론
본장에 제시된 사건은 범죄한 자를 살려 두고 여전히 자기 악 속에 있는 압살롬을 사면한 다윗 왕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사면한 것은 후일 그의 가정과 나라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 같은 결정을 통해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냉철한 판단과 결정을 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단어 해설

2절. 상제. 부모가 돌아가셔서 상중에 있는 사람.

5절. 과부. 고아, 나그네와 함께 율법으로 보호되는 사람. 과부를 나타내기 위해서 특별한 옷을 입었으며 자식이 없이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형제와 결혼하였음.

신학 주제

압살롬의 아름다운 외모. 요압의 주선으로 압살롬과 다윗 사이에 화해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본장은 중간에 압살롬의 외모에 대한 소개를 삽입하고 있다. 내용상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은, 장차 있을 압살롬의 반역을 암시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 때문이다. 본장에서 저자는 압살롬이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가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 극찬하는 것은 반대로 그의 신앙과 인격이 부족함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도 외모가 준수하였고(참조, 삼상9:2), 사무엘이 왕을 세우기 위해 이새의 집에 갔을 때 다윗의 형들도 용모가 뛰어났었다. 그러나 결국 사울은 멸망하였고 다윗은 형들을 제치고 왕이 되었다. 이처럼 외적인 준수함에 대한 성경의 경계는 단순히 외모의 불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영적 교훈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처음 볼 때 외적인 부분에 의해 상대방을 판단한다. 그래서 용모가 준수하고 고급스런 장식을 한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그처럼 용모가 뛰어났던 압살롬이 형을 죽이고 부친에 대해 반역을 도모한 것처럼 외모는 결코 사람됨을 알 수 있는 조건 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