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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게 말하는 엘리후

성경 권명

욥기

​성경 장

33

내용 개요

본장은 엘리후의 첫번째 변론을 기록하고 있다. 모두 4차에 걸친 엘리후의 변론 중 그 첫번째에 해당되는 본장은 다음과 같다. 곧 욥과 담판을 시도하는 엘리후(1-7절), 욥의 의에 대한 엘리후의 공박(8-12절),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13-18절)와 하나님의 간섭으로 고통당하는 인간(19-22절),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23-28절),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은 인간 구원(29-3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격적인 변론에 앞서서 엘리후는 자신의 변론을 다시 한번 정당한 것으로 밝힌다. 즉, 자신의 변론은 결코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그것처럼 판에 박힌 듯한 종교적 격언이나 경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만 허심탄회하게 진술된 것임을 강변한다.

강해

본장에서부터는 엘리후의 본격적인 변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본장은 엘리후가 욥의 그릇된 변론을 수정하려고 하는 데 초점을 두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욥에게 대화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우선 자신이 전개하는 말을 욥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면서 본론에 들어갑니다. 그는 욥의 주장을 하나님에 대하여 부당한 언사를 한 것을 공박하고 그것을 분석하면서 욥이 깨닫기를 촉구하였습니다.

1. 변론에 나서는 엘리후

1) 정직한 변론
엘리후는 먼저 욥이 자신이 하는 말을 들으며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달이 정직하고 신실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신실한 자의 말은 진리를 증거하며 거짓되고 어리석은 자들을 깨우치는 교훈이 됩니다.
a. 진실로(욥36:4)
b. 지혜와 공의(시37:30)

2) 전능자의 기운
엘리후는 자신의 존재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신이 자신을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자신을 살렸다고 했습니다. 이는 엘리후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그분의 영감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자이므로 욥에게 충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말의 권위를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있음을 역설한 것입니다.
a. 생기는 하나님의 영(민16:22)
b. 총명을 주심(욥32:8)

3) 말의 기회는 공정함
엘리후는 욥에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제안하였습니다. 사실 공정한 말은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자기의 말만 일방적으로 하고 듣지 아니하려는 태도는 신앙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공정한 자세도 아닙니다. 엘리후는 자기도 욥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피조물이며 자신의 존재가 욥을 두렵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엘리후가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대화하지 않을 것임과 욥의 말도 기꺼이 듣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생각입니다.
a. 잠잠치 말 것(시50:21)
b. 누구든지 공정한 변백의 기회(욥31:35)

2. 욥의 대답을 책망하는 엘리후

1) 욥을 책망함
엘리후는 욥이 자신에게는 죄와 허물과 불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는다는 말은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이 같은 단정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절대적인 의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욥의 순결함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후가 단지 겉으로 드러난 욥의 고난을 보고 욥을 판단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a. 까닭 없이 치셨다고(욥9:17)
b. 자신의 도가 정결하다고(욥11:14)

2) 하나님과 인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 문제 중 다수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바람이 하나님과 변쟁할 수 없는 것은 전능자 하나님께서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인간에게 스스로 진술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변론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이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행사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참조, 롬9:19-23).
a. 자기 뜻대로 행하심(단4:35)
b. 피조물이 조물주와 다툴 수 없음(사45:9)

3) 하나님의 교훈 방법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계시로써 아람을 교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에 별 관심이 없이 행동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이상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 주기도 하십니다. 사실 성경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이런 방식이 종종 취해졌습니다. 이는 요셉이나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선하시고 자비하신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결코 인간이 멸망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십니다.
a. 현몽(창20:3)
b. 이상(민12:6)

3. 고난이 유익을 줌

1) 고난의 의미
꿈과 이상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도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시기도 한다고 엘리후는 말하였습니다. 그 고통이란 뼈가 늘 쑤시고, 식물을 멀리하고, 몸은 쇠약해지며, 생명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엘리후의 이 말은 현재 고난당하고 있는 욥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해 주는 효과를 기대하는 뜻을 가집니다. 엘리후는 계속해서 질병적인 고통을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a. 낮추심(신8:16)
b. 범죄치 않도록 하심(창20:6)

2) 생명으로 이끄심
하나님의 행사는 생명으로 이끄시는 섭리 안에서 베풀어집니다. 인간의 행사는 허무한 일이 적지 않지만 하나님의 행사는 보람되고 유효한 일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생명을 얻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됨을 경험하게 도우십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a. 치료의 하나님(출15:26)
b. 단번에 회복시키신 그리스도(히9:12)

3) 욥을 교훈하는 엘리후
엘리후는 자신이 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교훈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교훈을 베풀었으나 그것이 올바른 교훈의 내용과 방법을 담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훈은 학자의 혀를 받아 먼저 베풀어져야 하며(참조, 사50:4), 생명의 샘과 같은 시원함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참조, 잠13:14). 엘리후는 욥을 의롭게 하려 한다고 말함으로써 욥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태도를 가지고 교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a. 변명을 들으라(욥13:6)
b. 자세히 들으라(욥21:2)

결론
엘리후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부당한 언사를 공박하면서 어떠한 태도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목적에 관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임할 때 그 고난에 대하여 부당한 언사를 표출하지 말고 고난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으로써 그것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단어 해설

2절. 동하는구나. '정돈하다, 말하다'를 뜻.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하는 모습을 나타냄.

4절. 하나님의 신.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삼위인 성령. 성도의 생활을 성화시키는 일을 하심.

7절. 누르지. 원어 <db'K;:케바드>는 '무겁다, 존귀하다'를 뜻. 큰 권력을 가진 자가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

10절. 칠 틈. 원어 <t/aWnT]:테누오트>는 '거절하다, 낙담시키다'라는 말에서 유래. '이간, 적의, 기회'를 의미.

11절. 차꼬. 사람의 손발을 묶는 데 사용하는 형틀. 나무에 구멍을 파서 죄인이나 노예의 손발을 끼워 넣었음.

15절. 이상.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것.

16절. 인치듯. 원어 <!Toj]y":야흐톰>은 '봉인을 찍다, 봉하다'를 뜻. 중요한 서류나 문헌의 신빙성을 나타내는 상징.

17절. 교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서 겸손하지 못한 상태. 하나님은 교만을 큰 죄 중의 하나로 보셨음.

18절. 칼. 원어 <jl'v,:솰라흐>는 '무기, 병기'를 뜻.

19절. 뼈가 늘 쑤심의 징계. 뼈들이 서로 다투는 것에 의안 징계.

20절. 싫어하며. 원어 <!h'z":자함>은 '사악하다, 가증스럽다, 고약한 냄새가 나다'를 뜻.

23절. 천사. 하나님의 수종하도록 만들어진 영적 존재.

24절. 대속물. 원어 <rp,K:코페르>는 '덮다, 속죄하다'에서 유래하였으며 '몸값'을 뜻.

26절. 회복시키시느니라. 원어 <bWv:슈브>는 '돌아오다, 회개하다'를 의미.

신학 주제

엘리후의 1차 변론. 본장을 통하여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연단'을 의미하는 것임을 본격적으로 변론하기 시작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계시의 방법을 설명하며 욥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지적하고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궁극적 축복으로 설명하려고 의도하고 있다. 그는 먼저 욥의 무죄 주장과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들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피조물인 인간과 더불어 싸우시거나 아무 근거 없이 누명을 씌우지 않으신다고 반박한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욥의 불평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항상 주권적인 방법으로 활동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꿈이나 이상' 그리고 '고난의 결과' 등의 방법으로 계시를 전달하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결과를 통하여 인간에게 당신의 의지나 섭리의 의도를 말씀하시는 것이기에 욥의 고난은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본장을 통하여 욥의 고난에 대한 세 친구의 인과 응보 논리에 치우친 변론과는 완전히 다른 엘리후의 이해를 살필 수 있다.

영적 교훈

엘리후는 본장을 통하여 욥의 고난은 멸망과 정죄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빛'이 비추이는 큰 축복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엘리후의 확신은, 욥의 세 친구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성도는 삶 복에 위기가 닥쳐와도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반드시 이 고난을 참고 견뎌내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성도에게도 고난이 닥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고, 그 고난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난 없는 성도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고난 없는 축복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