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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

성경 권명

잠언

​성경 장

15

내용 개요

의인과 악인의 특징에 대해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특히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차이를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악인과 의인의 모든 차이가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참된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잠언 전체의 주제를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할 때 지혜롭게 하는 자는 화평을 이루나 과격한 말은 다툼을 일으킨다(1-7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8-12절). 사람의 참된 기쁨은 물질에 있지 않고 마음의 화평에 있으므로 분을 내지 않고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자가 축복이 있을 것이다(13-20절). 그러므로 의인은 지혜로운 말을 즐겨 하고 불의한 뇌물을 멀리함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나, 악인은 훈계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멸시함 으로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21-33절).

강해

사람의 입술과 마음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바를 그의 입과 행동을 통하여 나타냅니다. 본장은 사람의 마음과 말, 훈계에 대한 태도와 지혜, 그리고 이러한 전반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결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과 그의 모든 삶을 보시며 그들의 삶에 합당한 보응을 하십니다.

1. 언어 생활

본장의 1-2,4,23,28절은 모두 언어 생활에 대한 교훈입니다. 어떤 사람의 언어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을 그 입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쌓아 놓은 악을 그의 입을 통해서 쏟아냅니다. 그는 노를 격동하는 과격한 말을 하며, 패려한 것을 말하며 자신의 미련함을 드러내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미련하고 악한 자의 말은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스럽습니다. 그의 혀는 마치 칼과 같아서 그것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를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분노를 쉬게 하는 온유한 말을 하며,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을 깊이 생각한 후에 합니다. 그의 혀는 생명 나무와 같이 듣는 이의 마음을 치료하며 생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의 입과 입술은 참으로 복되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참으로 그는 그의 입술의 열매로 인한 복록을 누립니다.
a. 마음과 말(마12:34)
b. 입술의 열매(잠12:14)

2. 훈계

본장의 5,10,12,31-33절은 훈계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와 미련한 자는 훈계에 대하여 극적으로 대조되는 태도를 취합니다. 훈계가 참으로 필요한 사람은 지혜로운 자이기보다는 지혜가 없는 미련한 자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미련한 자는 훈계받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지혜로운 자가 훈계를 달게 받습니다.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나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맞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이 가장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타인의 훈계를 멸시하고 그것에 대해 화를 냅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영혼을 해치는 것인데 그는 결국 자기 마음대로 행한 것에 대한 엄한 징계를 받게 됩니다. 반대로 징계와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지혜로워져서 더욱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지혜로워져서 더욱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훈계를 잘 받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가지므로 하나님의 내리시는 복도 풍성하게 됩니다.
a. 있는 자와 없는 자(막4:25)
b. 하나님 경외와 복(잠19:23)

3. 지혜
본장의 7,14,20-22,24절은 지혜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으며, 18-19절은 그것과 관련하여 노함과 게으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언어 생활과 훈계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은 또한 삶의 여러 부분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감당합니다. 지혜가 있는 자는 자신이 가진 지혜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맛보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과 같아서 맛을 보아 알면 알수록 더욱 그것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계속해서 더욱 지혜를 구하고, 그것을 전파하며, 그의 지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생명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결코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정함이 없으며 단지 그의 미련함을 채워 줄 미련한 것을 즐거워할 뿐입니다. 그는 지식을 미워하고 훈계하는 자를 자기 부모라 할지라도 미워하여 멀리합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그를 사망과 음부에 이르게 합니다. 한편 미련한 자는 동시에 분을 쉽게 내고 다투는 자이며 게으른 자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또한 정직하며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입니다. 이들의 상반된 특성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a. 하나님의 선을 맛봄(시34:8) .
b.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지식을 미워함(잠1:22)

4. 마음의 즐거움

본장 13,15-17,30절은 마음의 즐거움과 근심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지혜롭고 의로운 자와 미련하고 악한 자의 현재적 상태가 반드시 그들의 특성에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롭고 의로우나 가난하기도 하고, 미련하고 악하나 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부요함과 가난함은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사람의 행과 불행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삶의 자세와 태도에 더 많이 의존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유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마음이 즐겁고 괴로운 것은 그의 행, 불행을 결정짓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식구끼리 화목하게 그리고 즐겁게 사는 것은 그들의 가난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듭니다. 반대로 부를 인한 다툼과 근심은 차라리 그러한 부요함이 없을 것을 소원할 정도로 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에게 부를 허락하실 때에는 근심을 제거하고 주시는 것입니다.
a. 마음의 즐거움과 근심(잠17:22)
b. 부와 근심 (잠10:22)

5. 신정론

본장의 3,6,8-9,11,25-27,29절은 소위 신정론(Deocracy)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즉 공의로운신 하나님께서 이 땅 위의 의인과 악인을 어떻게 다루시며 그들의 결국 어떻게 되느냐가 본문 말씀들의 주된 관심사인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항상 악인과 의인의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십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동기까지도 꿰뚫어 보시고, 그가 의인인지 악인인지를 구별해 내십니다. 하나님 앞에 숨겨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속성상 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인을 미워하시며 그들을 멀리하시는 반면, 의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그들의 악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이 어떤 종교적인 행위들을 한다 해도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작은 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a.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삼상16:7)
b. 하나님의 거룩과 악(합1:13)

결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은 지혜 있는 자, 훈계를 가까이하는 자, 의로운 자들입니다. 즉 믿음이 있는 자라고 하겠습니다(참조, 히11:6). 하나님은 의인을 가까이하시고 악인을 멀리하십니다. 여기에 형식적인 종교 행위는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만이 있을 뿐입니다.

단어 해설

5절. 업신여기는. 호의적인 처분이나 봉사를 받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경멸적인 태도로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13절. 빛나게. 원어 <bf'y::야타브>는 '좋다, 훌륭하다, 기쁘다'라는 뜻으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인해 그 사람의 얼굴이 환히 빛나는 것을 말한다.

25절. 허시며. 건축물을 부수어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30절. 윤택하게. '살찌다, 번영하다'라는 뜻으로 살지고 기름진 희생 짐승들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이는 번영과 윤택과 부요를 뜻하기도 한다.

신학 주제

믿음과 행함.
본장에서 저자는 의인과 악인의 태도를 대조시키면서 제사와 기도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저자의 신학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본서 전체를 통해 저자가 구체적인 규범들을 가지고 구원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전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본장에서 제사와 기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문화적인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고대 근동은 종교가 매우 왕성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제사와 기도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에서 행해졌다. 그런데 이방 종교에서 제사와 기도는 전적으로 자신의 소원을 신으로부터 받아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즉 제사와 기도를 통 해 제물을 드림으로 신의 기분을 만족시키고 그 대가로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요구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당연히 이방 종교는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형태로 고정되었다. 이런 영향은 이스라엘에도 미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을 소홀히 여기고 부정과 불의를 일삼으면서도 종교적 의무인 제사와 기도는 빈번히 드렸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사상이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셨던 것이다(참조, 삼상16:22). 본장에서 저자가 악인과 관련하여 제사와 기도를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잠언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는 바울의 이신칭의와 야고보의 행함으로 얻는 구원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적 교훈

오늘날 심각한 가족 문제 중의 하나가 부모의 유산을 둘러싼 형제들의 다툼이다. 서로 많은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의 생존시에 재산을 중심으로 가족 관계를 유지한 것이지 참된 사랑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참된 기쁨이 없고 서로 미워하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물질은 결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없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과 믿음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