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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혜자의 생활 모습

성경 권명

야고보서

​성경 장

3

내용 개요

야고보서 저자는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언급한다. 첫째는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선생은 말의 능력을 올바로 깨닫고 통제되지 않는 말의 위험성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혀는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일 뿐만 아니라 혀로 인한 결과는 온 신체에 영향을 준다. 야고보서 저자는 여러 가지 예증을 통하여 길들여지지 않은 말의 치명적인 위험과, 동일한 입술로 축복과 저주를 빌 수 있는 모순을 설명한다(1-12절). 둘째는 참된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질서를 깨뜨리고 시기와 분쟁을 유발시키는 지혜는 거짓된 지혜이다. 오직 위로부터 내려온 참된 지혜는 거룩하고 관용하고 평화를 이루고 선한 열매를 맺는 지혜이다(13-18절).

강해

야고보 사도는 본장에서 성도들의 삶의 원칙과 양태에 대해서 교훈 하였습니다. 선생 되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겸손과 책임을 강조하였고, 언어 생활에 있어서의 말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강조함으로써 성도가 혀를 잘 다스려 거룩하고 덕을 세우는 말만 할 것을 명했습니다. 또한 세상적인 지혜를 버리고 위로부터 내려지는 지혜를 받아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교훈했습니다.

1. 선생 된 자의 책임

1) 선생이 되지 말라
야고보 사도는 성도들에게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는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모든 성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소개하는 선생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사도의 권면은 스스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할 때에 교만해질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핀간은 연약하여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면 자신은 이미 그 진리 위에 굳게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한 착각에 빠져 그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선생 노릇을 하려 했습니다.
a. 하나님만이 진정한 선생(마23:8-9)
b. 하나님께 받은 지혜(고전4:7)

2) 더 큰 심판을 받을 번생 된 자
야고보 사도는 선생 된 자는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진리를 몰라서 행치 못하는 자보다 진리를 알면서도 행치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더욱 진노하십니다. 또한 선생 된 자가 잘못 가르치면 소경 된 자가 소경을 인도하는 것 같아서 둘 다 실족하게 됩니다. 선생 된 자의 잘못으로 실족한 영혼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간과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a. 가르친 것을 행치 못함(롬2:20-21)
b. 비판한 것으로 비판받음(마7:1-2)

2. 경계해야 할 말의 실수

1) 혀의 가공할 위력
야고보 사도는 성도들에게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자라고 말하면서 말의 영향력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큰 배를 움직이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작은 키이듯이 사람의 몸에서 혀는 작은 부분이지만 매우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혀는 작지만 온몸을 더럽히고 죄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고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악한 말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혀의 영향력이 큰 것은 사람의 생각이 혀를 통한 말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a. 조급한 말(잠29:20)
b. 함부로 하는 말(잠12:18)

2) 길들이기 힘든 혀
사람이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까지도 길들이지만 제일 길들이기 힘든 것이 자기 몸의 혀임을 야고보 사도는 밝히면서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 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인간 본성이 타락하여 죄로 오염되어 있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혀는 악독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러한 혀를 제어한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도 힘든 일이라는 입니다. 악한 혀를 다스리는 방법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재갈을 먹여야 함(약1:26)

3) 성도가 경계해야 할 입술의 범죄
야고보 사도는 특히 성도가 입술로 범죄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것이 도리에 맞지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동시에 형제를 저주하는 것은 마치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동시에 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럴 수 없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 열매를, 감람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낼 수 없듯이 성도가 악한 것을 입술의 열매로 맺어서는 안 됨을 교훈 하였습니다.
a. 피하여야 할 어리석은 말(엡5:4)
b. 심판 있음을 기억함(약2:12)

3. 참된 지혜와 거짓 지혜

1) 삼가야 할 세상적인 지혜
야고보 사도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며 정욕적인 지혜를 삼갈 것을 성도들에게 명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욕심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하는 데 사용됩니나. 이러한 지혜가 있는 사람은 항상 다툼과 시기로 진리를 거스릅니다. 이러한 지혜를 가진 자는 이 세상에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기가 쉽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게 됩니다.
a. 사사로운 지혜(잠23:4)
b. 세상의 정욕(요일2:16)

2) 위로부터 난 지혜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지혜는 성령의 지혜로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지혜의 특징을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여, 거짓과 편벽이 없고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말했습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성령의 지혜를 힘입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지혜가 부족한 자는 하나님께 구하여 받으라고 명하였습니다(참조, 약1:5). 또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라야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참조, 행6:3).
a.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약1:5)
b. 생명을 보존케 함(전7:12)

결론
성도가 세상의 빛 된 자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삶 속에서 언행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마음속에 쌓은 선이 말과 행위로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언행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하고 복음의 빛을 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단어 해설

2절. 실수. '걸려서 비틀거리다, 넘어지다, 패배하다'라는 뜻으로 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3절. 어거하며. '옮기다, 인도하다, 방향을 고치다'라는 뜻으로 어떤 사람이나 짐승을 잘못 행하지 않게 제어하고 통제 하는 것을 말한다.

5절. 불. 성경에서 불은 심판을 상징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혀가 가져오는 해악을 불에 비유하고 있다.

7절. 길들었거니와. 사람이 자신의 의도대로 지배하고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9절. 형상대로 인간의 원형인 하나님의 신적 본질로 지정의를 포함한 내면적 속성을 가리킨다.

12절. 무화과나무.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나무로 여름에는 큰 잎들을 내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 팔레스타인의 주요 산물 중의 하나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한다.

14절. 독한. 원어 <pikro;n:피크론>은 '불유쾌한, 괴로운'이란 의미로 여기서는 시기와 다툼이 공동체에 해악을 미침을 의미한다.

17절. 편벽. '구별할 수 없는, 애매한'이란 뜻으로 타인에 대해 의심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태도를 말한다.

신학 주제

말의 중요성. 현대 철학에서 언어는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명의 철학자를 꼽으라면 하이데거와 비트겐쉬타인일 것이다. 후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에 의하면 언어는 진리의 집이라고 하였고, 후기 비트겐쉬타인의 언어 분석 방법인 화용론적 의미론에 의하면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소위 포스트모던적인 철학을 극단화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인 데리다는 글쓰기와 글읽기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말과 말이 표현하려고 하는 대상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부인한다. 아무튼 쟁쟁한 현대의 여러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언어, 즉 말을 자기의 철학의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의 중요성을 웅변적으로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신앙적인 눈으로 볼 때에도 말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제2위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참조, 요1:1).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들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다.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시고, 성경은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적인 계시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경 말씀은 교회의 강단에서 목사의 설교 말씀으로 선포되어진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그 자체의 성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성육신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으로 나타나고, 마지막으로는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목사의 설교 말씀으로 나타난다. 말씀은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근원적인 생명력이다. 한편,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말은 중요하다. 인간은 말을 사용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말은 인간의 의사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고, 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말은 인간의 마음의 중심을 드러내 주는 중요 수단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저자는 말의 중요성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영적 교훈

세상에는 말해야만 할 것이 있고 말하지 말아야 날 것이 있다. 진실을 말해야 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고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깨뜨리는 것과 부정과 불의를 일으키는 말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책임질 수 있는 것만 말하고 책임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