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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당하여 재판받는 그리스도

성경 권명

요한복음

​성경 장

18

내용 개요

본장부터 19장까지는 예수의 수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본장은 주로 예수의 체포와 심문에 강조를 두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그의 영광의 때(참조, 요17:1)라고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수난 기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또한 요한은 예수의 수난에 대한 자발심을 강조하고 있고, 빌라도의 심문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공관복음과 비교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장은 체포되시는 예수(1-9절), 잘려진 말고의 귀(10-11절), 안나스 앞에 선 예수(12-14절),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15-18절), 안나스의 심문(19- 24절), 거듭되는 베드로의 부인(25-27절), 빌라도의 심문(28-4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수난의 동기는, 예수의 중보 기도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수난과 죽음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사역은 이와 같은 수난과 죽음을 향해서 걸었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강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러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아 빌라도의 법정에 세웠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죽일 만한 죄목을 발견할 수가 없었지만 유대인들의 강력한 요구에 못이겨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1. 체포당하신 예수

1) 예수를 잡으러 온 자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가 이르자 유다를 앞세운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이 예수를 체포하러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계셨으므로 그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찾는 사람이 나사렛 예수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전혀 당황하거나 두려운 기색도 없이 그가 바로 자신임을 밝히셨습니다. 요한은 그때에 예수를 잡으러 온 자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위엄 앞에 그들이 서 있을 수가 없었음을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임을 알았기에 죄 없는 자신을 체포하려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옴(마26:47)

2) 제자들을 보호하시려는 예수
예수께서는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자신이 예수임을 밝히시면어 제자들은 잡지 말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은 구속 사역을 위하여 고난받으심을 받아들이셨지만 제자들에 대해서는 보호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사랑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지 않았다는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차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목격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할 귀중한 사명을 지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결국엔 예수의 죽으심과 같이 복음을 위해 순교당할 것이지만 그때는 아직 아니었던 것입니다.
a.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요17:6)
b.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음(요17:12)

3) 베드로의 폭력을 꾸짖으신 예수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 하자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폭력으로 대항함으로써 예수가 체포당함을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예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사하셔서 그들을 물리치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행위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자신이 마셔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잡히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자기 몸을 내어 주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a. 원수 갚음은 하나님께 있음(히10:30)
b. 검을 쓴 자는 검으로 망함(마26:52)

2. 베드로의 부인과 안나스의 심문

1)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
예수께서 잡히신 후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로 끌려갔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와 함께 예수가 어떻게 되시는가를 보려고 몰래 쫓아갔습니다. 그때에 문 지키는 여자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예수와 함께 하던 자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그 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잡히셔서 어떠한 형벌을 받게 될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의 제자임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a. 죽을지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음(마26:35)
b. 베드로의 장담(마26:33)

2) 안나스의 예수에 대한 심문
안나스는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심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답변하기를 회피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평소에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진리를 설파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교훈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였기에 어디서나 그 말씀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그 말씀으로 인하여 대제사장에게 불손하다는 이유로 하속 하나가 예수를 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의 제정자로서 대제사장에게 공손해야 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a. 거짓 증거를 얻기 위함(마26:59-60)
b. 예수를 정죄하기 위함(막14:61-63)

3) 베드로의 반복된 예수 부인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나서도 그 곳을 떠나지 아니하고 사람들 중에 있을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 다 예수를 부인 함으로써 예수께서 그에게 세 번 주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째 부인하였을 때 곧 닭이 울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예수께서 베드로에 대해 예언하신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a. 예수의 예언 성취(마36:74)
b. 사람을 두려워함(잠29:25)

3. 빌라도에게 재판받으신 그리스도

1)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이 없나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을 때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특별한 죄목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문제에 대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로 해석하였기에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데려가서 그들의 법대로 심판할 것을 명했습니다. 빌라도는 공연히 종교 싸움에 끼어들어 이익을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권한으로는 예수를 죽일 수 없으니 로마법으로 재판하여 예수를 죽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했습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예수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음당하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a. 유대인의 예수에 대한 고소(눅23:2)
b. 많은 것으로 예수를 고소함(막15:3-4)
c. 죄 없으신 그리스도(히4:15)

2) 빌라도의 예수 심문과 사형 언도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심문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문제였습니다. 빌라도가 예수와 대화를 나눈 결과 예수는 로마 정권에 대한 반역의 혐의가 없어 보였습니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것은 종교적인 의미이지 정치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판단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의 반발이 심하므로 바라바와 예수 중 선택하여 석방시킬 것을 제안했습니다. 빌라도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예수가 풀려날 줄 알았으나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풀어줄 것을 요구함으로써 예수는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의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a.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신 예수(요17:14)
b. 정치적 왕이 되기를 거부한 그리스도(요6:15)
c. 책임을 회피하려는 빌라도(마27:24)

결론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기 몸을 십자가의 산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는 유대인들을 물리칠 힘이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조용히 세상 권세 앞에 재판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이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행하여야 합니다.

단어 해설

1절. 기드론 시내.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사해까지 32km 뻗어 있다. 이곳은 겨울 우기 동안에만 물이 약간 흐르고 평소에서 말라 있는데 구약 시대에는 우상들이 불태워졌던 곳이기도 하다(참조,왕상15:13).

3절. 등과 홰와 병기.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를 체포하러 온 무리들이 검과 몽치를 들고 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등불과 횃불이 언급된 것은 예수를 체포할 때가 어두을 때였음을 알려 준다.

11절. 아버지께서 주신 잔. 이 말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의 내용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 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을 가리키는데 예수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의해 예정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13절. 안나스. 안나스가 예수 당시에는 대제사장이 아니었지만 예수를 대제사장보다도 안나스에게 끌고 간 것을 볼 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자였음을 보여 준다. 안나스의 아들 다섯도 제사장직을 맡았었다.

15절. 또 다른 제자. 베드로와 함께 예수를 따라간 제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는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으로 보고 있다.

27절. 또 부인하니. 베드로의 3차 부인이 여기서는 간결하게 나타나 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를 저주까지 하며 부인하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참조,마26:74).

31절.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고 종교적으로 회당에서 축출하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법정을 통해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이다.

36절.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는 빌라도의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나라에 대해 설명한다. 예수는 그의 나라가 권력으로 유지되는 세상과는 다른 나라임을 말함으로 결국은 자신이 왕임을 밝히고 있다.

38절.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는 진리이신 예수께 이러한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이 진리를 알지 못함을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자신이 진리이심을 증거하셨다. 아무 죄도.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한 후 예수께서 사법적인 처벌을 받을 만한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무죄라는 자신의 입장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39절. 유대인의 왕. 빌라도가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칭한 것은 진심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었으나 부지중에 예수의 왕 되심을 증거한 결과를 가져왔다.

신학 주제

빌라도의 심문.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에게 붙여진 죄목은 세 가지였다. 첫째 내란 소란죄, 둘째 납세 거부죄, 셋째 자칭 왕이라 칭한 죄 등이다(참조, 눅23:1-25). 이와 같이 예수에게는 정치적 죄목이 붙여졌었다. 당시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유대의 종교적 자유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사건은 유대인들 내에서 자유롭게 재판하고 집행할 수 있었지만, 예수에게 붙여진 죄목이 정치적이었고, 또 사형 언도의 재가를 얻기 위해서도 로마 황제의 대리 통치자의 재가를 반드시 받아야 했다. 그래서 유월절 기간 동안 치안 관계상 예루살렘에 상주하고 있는 빌라도 앞에 예수를 압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빌라도의 첫째 질문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29절)를 통해 그가 이 사건에 개입하는 것을 몹시 꺼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에 대한 심리를 요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 사형 언도를 내려 주기를 요구하러 온 것이었다. 결국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통치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배려로 예수의 사형을 언도했다. 이로써 빌라도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처형하는 악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총독으로서의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예수를 석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소요로 인해 자신이 로마 정부로부터 책망을 받을까봐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예수를 처형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예수를 죽인 장본인으로 역사에 남는 불행한 인간이 된 것이다.

영적 교훈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는 매우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로마 식민지 상황하에서 대제사장직을 14년 간 연임했을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그의 다섯 아들들과 사위들을 재직케 할 정도로 로마의 신임을 얻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신임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세상의 신임을 아무리 많이 얻는다 하여도 그 영혼이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얻게 된 육체적인 업적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신을 정죄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지나친 처세술로 세상의 신임을 얻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임을 얻는 데 정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