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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

성경 권명

요한계시록

​성경 장

4

내용 개요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본다(1-3절). 그리고 보좌를 둘러싼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도 본다(4-5절). 또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었다. 네 생물은 각각 사자 모양과 송아지 모양과 사람 모양과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였다(6-11절).

강해

본장부터 시작해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보이신 본격적인 환상과 예언적인 광경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장에서는 사도 요한이 그가 본 하늘의 광경과 아울러 하늘에서 네 생물들의 찬양과 이십사 장로들이 불렀던 찬양으로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이 가득 찼던 환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장과 5장에서는 장차 있을 심판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보좌와 심판자를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늘의 환상들

1) 그리스도께서 앞일에 대해 보여 주심
본장에 펼쳐지는 예언의 환상은 그리스도께서 환상을 보여 주는 서신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 사이에서 지나시던 그리스도께서 이제 다시금 음성을 발하시어 요한을 부르시고 장차 있게 될 일을 그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일곱 교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편지로 적어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었듯이 이제부터 보여 주시는 장래의 일들에 대해서도 요한은 상세히 적어서 성도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은 이때 성령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이 예언의 환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a. 하늘의 음성이 올라오라고 하심(계11:12)
b.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천사를 보내심(계22:6)

2) 요한이 본 하늘의 광경들
요한은 먼저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심판의 자리로서 하나님 자신의 보좌입니다. 이 보좌에서 나오는 권세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지배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요한은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떤 표현으로도 그분의 모양을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요한은 그분이 벽옥과 홍보석 같다고 제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좌에는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둘러싸여있고 보좌 둘레에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 있는 스물네 개의 보좌들을 보았습니다. 이들 이십사 장로들은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의 전체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뵈면서 성도의 의를 나타내는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광의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십사 장로의 존재는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 서 하늘나라에 있는 승리적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전투적 교회의 모습이 아닌 승리한 성도들의 공동체를 상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요한은 보좌로부터 번개와 뇌성이 나는 것을 보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을 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요한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직접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a. 이십사 장로들이 경배함(계11:16)
b. 시험을 참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심(약1:12)
c. 하나님의 출현 광경에 백성들이 떪(출19:16)

3) 네 생물들을 봄
계속해서 요한은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를 보았으며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이십사 장로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네 생물들은 하나님의 보좌나 이십사 장로들, 하나님의 백성들과 가까이에 있었고 앞뒤에 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겔1:18과 겔10:12에 나타난 대로 통찰력과 지혜가 뛰어남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것들은 각각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같으며 독수리 같았다고 합니다. 이 생물들 역시 순서에 약간 차이는 있지만 에스겔이 본 환상과 같으며 각각 피조물들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사자는 짐승의 왕을 상징해 용기를 가지고 있었고, 송아지는 가축의 대표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장으로서 지혜를, 독수리는 새들의 왕이었습니다. 이들은 밤낮 둘러서서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사6장에서 이사야가 본 환상에 나타 나는 천사들과 같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그 날개의 주위에 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a. 스가랴서에 나타나는 순금 등대(슥4:2)
b.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네 생물(겔1:5)
c. 바퀴 둘레에 눈이 가득한 그룹(겔10:12)

2. 밤낮 쉬지 않는 하늘의 찬양

1) 네 생물들의 찬양
사도 요한은 네 생물들의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장면은 그들의 모습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지가 이사야가 본 환상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 찬양의 내용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였습니다. '거룩하다'를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그 삼위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고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라고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 번의 찬미를 성삼위에 대한 개별적인 찬양으로 돌리지 않더라도 3은 하나님의 숫자이므로 세 번 찬미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장엄하고 완전한 찬양을 의미합니다.
a.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들(사6:2-3)
b.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단4:34)
c. 이방인은 거짓 에배를 드림(롬1:25)
d. 천사들도 그리스도를 경배함(히1:6)

2)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
네 생물들의 찬양에 이어서 요한은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리어 겸손하고 경건하며 존경하는 태도로 찬양했습니다. 또한 이십사 장로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던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모든 은혜와 영광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영광이란 하나님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십사 장로들 자신들에게도 영광임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경배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이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므로 만물이 생겨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신 분으로서 누려야 할 영광을 당연히 가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만물을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계속적인 창조를 하시기에 또한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시기도 하십니다. 만물로부터 여러 방법으로 영광을 받으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롬11:36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하나님은 당연히 찬양을 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바로 그런 합당한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a. 이십사 장로들의 경배(계19:4)
b. 예배를 명령하십(대상16:29)
c. 만민이 그리스도께 경배함(빌2:10-11)
d.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리스도께 예배함(마28;17)

결론
요한이 본 장래의 모습에 대한 첫 계시를 기록하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에 대한 모습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들의 하나님 찬양을 기록하고 있어서 하늘에 넘치는 찬송의 물결을 우리들이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히 거하는 성도들이 찬양한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찬송생활을 돌아보고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을 향한 참다운 찬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단어 해설

1절. 하늘에 열린 문. 신약에서는 하늘을 둥근 천장으로 보는 고대의 견해를 반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신앙을 반영한다. 본문에서는 문이 열려진 성전을 나타내고 있다.

2절. 보좌 위에 앉으신 이. 메시야적인 왕인 예수는 하나님과 나란히 보좌에 앉아 있다. 그 보좌는 만물의 통치자이며 심판 주의 권세를 나타낸다.

4절. 면류관. '화관, 월계관, 상, 자랑'이라는 뜻을 가지며 원래는 경기에서 이긴 승자에게 주어진 상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성도들이 받을 생명의 면류관을 가리킨다.

9절. 존귀와 감사.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구원 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찬양의 내용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목적의 성취를 보여 준다.

10절. 엎드려. '떨어지다, 넘어지다, 엎드리다, 사라지다'라는 듯으로 보통 건물이 무너지거나 동물들이 쓰러질 때, 또는 눈이 내리는 자연 현상등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게 감사를 표현하고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낮추는 겸손한 행위를 가리킨다.

11절. 합당하오니. '상당한, 가치 있는, 알맞는, 적당한'이라는 뜻을 지니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의 감사와 존경을 받으시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신학 주제

네 생물. 네 생물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이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네 생물이 하나님의 피조물의 대표격에 해당한다는 견해이다. 본장에서 네 생물에 해당하는 헬자는 동서남북, 사계절 등에서 보듯이 세상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네 생물은 각각 사자와 송아지와 사람과 독수리의 모양을 하고 있다. 사자는 짐승의 왕자이고 송아지는 가축의 왕자이고 사람은 만물의 왕자이고 독수리는 조류의 왕자이다.
이러한 사실은 네 생물이 하나님의 피조물의 대표를 상징한다는 견해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 준다. 두 번째는 네 생물이 천사들이라는 견해이다. 본장과 같은 네 생물을 본 것은 사도 여한만은 아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주의 영광을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참조, 겔1:1-18). 그리고 후에 이 네 생물을 그룹들, 즉 천사들이라고 했다(참조, 겔10:20). 여섯 날개에 대해서는 사6:2의 스랍을 묘사할 때도 나온다. 이러한 증거들은 네 생물이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들일 가능성을 보여 준다. 참고적으로 부연하면, 유대 랍비들의 민2장 주석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각 방향으로 세 지파씩 네 개의 깃발을 들고 행진했는데 유다 지파는 사자가 그려진 기를 들고, 르우벤 지파는 사람이 그려진 기를 들고, 단 지파는 독소리가 그려진 기를 들고, 에브라임 지파는 송아지가 그려진 기를 들고 행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네 생물에 관하여, 사자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송아지는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사람은 참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독수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사자는 왕이신 예수님을 묘사한 마태복음이고, 송아지는 종이신 예수님을 묘사한 마가복음이고, 사람은 참 사람 되신 예수님을 묘사한 누가복음이고, 독수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묘사한 요한복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앞선 두 견해, 즉 피조물의 대표의 상징이거나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라는 견해가보다 설득력 있다.

영적 교훈

네 생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을 찬양하였다(8절). 네 생물의 찬양은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찬양이다. 물론 우리 인간들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해야 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찬양 받으실 만한 분이라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실존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도 하나님게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부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찬양받으셔야 마땅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