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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추구

성경 권명

전도서

​성경 장

2

내용 개요

전장에서 인생과 만물의 헛됨을 고백한 저자는 본장에서 허무함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교훈들은 솔로몬의 삶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추구한다. 어떤 이들은 술을 통해 쾌락을 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정욕을 통해 쾌락을 추구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부를 쌓고 큰 집과 많은 노비들, 보석들을 사들이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헛되며 결국엔 허무함만 가져다 줄 뿐이다(1-11절). 또한 남들보다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라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은 존재이다(12-17절). 그러므로 일평생 애쓰고 노력한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18-23절). 결국 사람의 참된 행복은 심령에서 나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소망을 가질 것이다(24-26절).

강해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무엇인가를 원합니다. 인간은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도 있고 못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못 가지는 것에 인생의 행복이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무엇을 추구하느냐는 것입니다. 본 장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헛된 추구로 인한 절망과 무의미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인생의 즐거움

1) 절제하는 생활을 추구함
전도자는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하여 먼저 절제 있는 생활을 계획하였습니다. 지혜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즉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되 지나침을 삼갔습니다. 그리고 평범 속에 기쁨을 추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따뜻한 가정을 만들기 원했으며, 자신의 육체를 잘 관리하여 건강하기를 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이러한 절제 속에 얻어지는 기쁨도 헛된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생활이 인간을 구원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a. 마음의 절제(잠16:32)
b. 육체의 절제(고전7:9)

2) 물질을 추구함
인생은 단 한번뿐인 삶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기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망을 가지고 살듯이 전도자도 큰 뜻을 품고 사업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많은 돈을 벌어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에 성공하고 나서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었다기보다는 자신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a. 물질을 추구한 결과(딤전6:10)
b. 물질을 추구하는 악한 시기(딤후3:1-2)

3) 쾌락을 추구함
인생을 설계하여 야망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도자는 이제 쾌락만을 추구합니다. 즉흥적이며 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여 인생의 허무와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술과 여자를 찾았습니다. 이렇듯 변덕스런 욕구를 모든 향락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채우려고 했지만 헛되다고 전도자는 고백합니다. 즐거움은 잠깐뿐이며,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수고는 대가 없는 괴로운 기억만을 주었습니다.
a.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딤후3:4)
b. 영혼을 거스르는 쾌락(벧전2:11)

2. 세상의 지혜

1) 교만된 지혜
사람들은 지혜를 얻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인격을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지혜자와 우매자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세상 지혜의 헛됨을 지적합니다. 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은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지혜자는 교묘하게 악을 행할 뿐이지 우매자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은 교만된 것일 뿐입니다. 도리어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더 지능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a. 세상지혜의 헛됨(롬1:22-23)
b. 교만한 자의 모습(합2:4)

2) 지혜가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부자, 가난한 자, 비천한 자, 고귀한 자, 선한 자, 악한 자 등 그들의 모습은 서로 틀립니다. 비록 삶의 과정은 틀리더라도 모두가 다다르는 궁극적인 기착지가 있는데 그것은 죽음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죽음에 압도되며 두려워합니다. 세상 지혜는 결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지혜자는 지혜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구원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a. 사단의 올무로서의 죽음(창3:4)
b. 정욕의 결과로서의 죽음(롬8:13)

3) 지혜자의 수고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 어떤 일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의 결과 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선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하는 일일지라도 그 일의 결과가 악인의 손에 쥐어질 수 있으며, 수고의 대가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도자의 체험에서 나온 지론입니다. 따라서 지혜 자의 수고는 미련할 뿐입니다. 헛된 수고로 인하여 근심만을 더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성도들은 주안에서 얻는 기쁨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a. 의인의 수고(잠10:16)
b. 악인의 수고(렘51:58)

3. 참된 보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전도자는 인생의 헛됨을 지적한 후에 인생의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생의 기쁨은 돈이나 명예, 혹은 부귀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인생이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생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인생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해하고 그 뜻을 준행하는 자는 인생의 보람을 맛볼 수 있습니다.
a.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결과(잠16:7)
b.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자(롬8:8)

2)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인생
무엇을 얻고자 하는 수고와 그 노력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시며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수고가 헛되며 악한 것은 그 수고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데에서 선과 악으로 판가름납니다. 인생의 수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수고는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사는 백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곳에서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a. 일하시는 주님(요5:17)
b. 일하는 자의 참된 모습(빌2:30)

3)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
전도자는 먹고 마시는 육체의 쾌락을 온전히 헛되다고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육체의 기쁨에 더하여 영혼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라면 참된 보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만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육체의 만족을 얻는 일은 결코 상반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주인이 되심과 동시에 육체의 주인이 되시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육체와 영혼중 어느 한쪽을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쾌락을 절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속에서 얻어지는 자유
가 인생의 참된 기쁨입니다.
a. 섬기지 말아야 할 것(출20:5)
b. 섬기는 방법(레22:20)

결론
인간의 뛰어난 지혜로도 만족을 얻지 못한 전도자는 쾌락과 물질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절제와 하나님 없는 물질은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전도자는 인생이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족하며 즐겁게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단어 해설

7절. 집에서. '집, 가정'을 뜻한다. 경우에 따라서 가족의 구성원이나 집안의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16절. 우매자. 둔하고 고집만 센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19절. 관리하리니. 전도자의 평생 수고의 결과가 타인에게 넘어가서 그의 관리와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한 한탓이다.

22절. 수고하는. 생존을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 주제

인간 지혜의 한계성. 솔로몬이 명성을 떨치게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의 뛰어난 지혜이고 둘째는 부귀 영화이다. 그러나 그의 부귀영화는 근본적으로 뛰어난 지혜의 소산이라고 볼 때, 결국 솔로몬의 위대한 명성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혜에서 연유하였다. 그런데 본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지혜가 결코 우매자의 것보다 낫지 못하며 헛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저자의 고백은 인간이 가지는 지혜의 한계성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한편 성경은 두 가지 점에서 저자의 고백을 뒷받침하고 있다. 첫째로 인간은 앞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자신에게 닥쳐올 앞일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행위와 앞일을 아시고 계신다(참조, 시142:3).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미련함보다 못하다고 가르친 것이다(참조, 고전1:25). 둘째는 사람의 지혜는 계획을 세워도 그 계획대로 실행할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참조, 욥42:2). 이상과 같은 점에서 저자는 인간 지혜가 헛되다고 교훈한 것이다.

영적 교훈

세상이 점점 타락의 길로 향하는 것은 쾌락의 탐닉성 때문이다. 즉 한번 쾌락에 빠진 사람은 좀더 자극적인 쾌락을 맛보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부를 얻은 사람은 다시 권력을 얻기 위해, 그것을 얻은 사람은 또다시 육체의 쾌락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좇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디서도 결코 완전한 쾌락을 얻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쾌락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결국은 파멸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직 참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구해야 한다. 그럴 때 성도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즐겁고 기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