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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기뻐하심

성경 권명

누가복음

​성경 장

15

내용 개요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비난하여 죄인들과 한 통속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1-2절).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길 잃은 양의 비유이고(3-7절), 둘째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이고(8-10절), 셋째는 탕자의 비유이다(11-32절).

강해

본장에는 잃었던 양의 비유(3-7절), 잃었던 드라크마의 비유(8-10절),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세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의 사랑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1. 잃은 양의 비유

1) 세리와 죄인들이 주께 나아옴
예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부하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누리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죄인이라고 멸시당하는 창기나 세리 그리고 사람들에게 부정하다고 따돌림당하던 문둥병자, 절뚝발이, 소경과 같은 사람들은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고 그들을 회개시키고 그들의 육신의 병을 고치심으로써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가까이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셨음(고전1:27)

2) 잃어버린 양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비유를 들어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잃은 양의 비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었습니다. 목자는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안전한 곳에 놓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양을 그냥 놔두면 필경은 맹수들의 먹이가 되거나 실족해 죽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목자로서는 그 양을 찾는 노력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a.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함(렘50:6)
b. 주께서 친히 양의 목자가 되심(겔34:15)

3) 기뻐하는 목자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선 목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한 마리 양을 찾았습니다. 그는 잃었던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양이 지쳐 있거나 다리가 상해서 걷지 못할 때 목자들은 그 양을 어깨에 메는 것입니다. 양을 찾은 목자는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하나님 곁에 안전히 거하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잃은 양은 죄악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참조, 마9:13).
a.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함(눅19:10)
b. 함께 즐기기 위함(눅15:6)

2.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1)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열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잃어 버렸습니다.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화로서 로마의 데나리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전 300년경에 한 드라크마는 양 한 마리의 값이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그 가치가 상당히 절감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에게 열 드라크마가 있었다는 것은 매우 가난한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들(약2:2)
b. 외로운 자들을 의미함(시10:14)

2)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열 드라크마를 소유한 여인은 그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등불을 켜서 찾아나섰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가난한 서민의 집에는 창문이 없는 것이 보통이어서 작은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릴 경우 찾으려면 낮이라도 등불을 켜야만 했습니다. 이 여인도 잃은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한 손에는 등불을 가지고 또 한 손에는 비를 가지고 쓸면서 찾았을 것입니다.
a,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은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님(마18:14)
b. 의롭게 하기 위함(롬8:30)

3) 기뻐하는 여인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각고의 노력 끝에 찾은 여인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잔치를 배설하고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여인에게 있어서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하여 기쁨을 같이 나눈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기쁨을 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비유를 통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참된 회개를 하늘나라의 모든 즐거운 노래들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a. 생명을 얻는 것(행11:18)
b.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됨(눅15:10)

3.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1) 자신의 분깃을 달라는 아들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 아들이 자기 아비에게 자신의 분깃을 달라는 이야기로 비유를 시작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부자 아버지 슬하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세계를 동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오게 될 분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들의 고집을 안 아버지는 그에게 돌아갈 재산을 주었습니다.
a. 악한 자라도 자식의 청원은 거절치 못함(마7:11)
b.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두 아들로 비유함(마21:28)

2) 후회하는 둘째 아들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곧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돼지를 치는 종의 자리에까지 전락하였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심한 굶주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배고픔으로 인해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회상하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바로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a. 궁핍은 유리함의 결과임(히11:37)
b. 예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음(요6:35)

3) 기뻐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목격하고 아직도 상거가 먼데도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아버지의 기뻐함과 아들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주었습니다. 또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웃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아들로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죄인의 회개를 자장 기뻐하십니다.
a. 모든 육체가 구원받는 것이 하니님의 뜻임(딤전2:4)
b. 벗과 이웃을 초청하여 함께 즐김(눅15:6)

결론
우리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의 회개를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도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악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어 해설

2절. 원망하여. 원어 <diagogguvzw:디아공귀조>?'불평하다, 떠들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불만에 가득 찬 소리를 나타낸다.

5절. 즐거워. 원어적으로는 기쁨이 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하며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나타낸다.

신학 주제

잃은 양 비유와 탕자 비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사람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시려고 본장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 오셨다. 비유를 통하여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이다. 잃은 양 비유의 결론은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한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이며 회개가 필요 없는 의인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이란 스스로 교만하여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길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하여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자신의 메시야적 사역을 설명함과 동시에 스스로 의인인 양 생각하고 교만에 빠진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흔히 탕자 비유로 알려져 있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고 그 아들이 돌아온 후에는 큰 잔치를 베풀어 벅찬 기쁨을 만끽했다. 여기서 탕자의 형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탕자의 형은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항상 아버지 늘 옆에서 보필해 왔던 자신에게는 작은 잔치라도 베풀어 준 적이 없었는데 망나니였던 둘째 아들은 집을 뛰쳐나갔다가 돌아온 것뿐인데 큰 잔치를 베풀어주는 것에 대하여 분노했다. 그리하여 자기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부르듯이 아버지의 돌아온 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까지 했다(30절).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을 알지 못하고 탕자의 진정한 회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탕자의 형은 바로 예수를 비난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의 진정한 회개의 가치에 대하여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영적 교훈

탕자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그것을 가지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던 탕자는 결국에는 돼지 먹이인 쥐엄 열매조차도 먹기 힘든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잘살아 보겠다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최소한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인간일지라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회개한 죄인을 기쁘게 받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