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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총독 베스도 앞에 선 바울

성경 권명

사도행전

​성경 장

25

내용 개요

전장에 이어 본장에서는 후임 총독인 베스도 앞에서 변론하는 바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총독들에게 심문받는 과정에 바울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써 로마에 가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로마 총독과 바울 사이에 개입하시어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베스도 앞에서 변론하는 바울(1-12절), 자문을 구하는 베스도(13-22절), 아그립 바와 버니게(23-27절)로 구성되어 있다. 바울은 연속되는 고위층 인물들과의 재판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주관하고 계심을 침착하게 변론하게 된다.

강해

벨릭스의 뒤를 이은 베스도는 도임한 지 삼 일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의 내용을 듣고 가이사랴로 내려와 바울을 재판 자리에 세웁니다. 이때 바울은 베스도에게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세워 줄 것을 요청합니다. 얼마가 지나 아그릴바와 버니게가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그때 베스도는 바울의 일을 의논하므로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 서게 됩니다.

1. 베스도의 재판

1)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의 고소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함을 알면서도 감옥에 가둬 두었으나 종국에는 그 지위를 잃어버리고, 그 뒤를 이어 유대 총독으로 베스도가 부임을 했습니다. 가이사랴로 부임한 베스도는 삼 일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높은 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이때를 바울을 살해할 호기로 생각한 듯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재판할 것을 청했습니다. 이때를 기회로 매복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들에게 가이사랴로 내려와 자신의 법정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 내용을 진술하라고 명했습니다.
a. 재판관의 공의(신16:18)
b. 악한 행실(약3:16)

2) 베스도의 재판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장로들이 총독의 명령대로 했을 때, 바울은 그들이 고소한 죄목 하나하나에 대해 2년 전 벨릭스 앞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직접적인 반론으로 대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무죄함을 힘있게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의 주재하에 열리는 심문에 응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베스도가 산헤드린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자신을 다시 죽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리 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이 재판을 유대 통치자의 하급 법정에서 로마의 최고 법정으로 옮길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이 권리를 사용해서 가이사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a.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함(막15:15)
b. 가이사에게 호소함(행26:32)

3) 가이사에게 호소
바울은 베스도가 이런 종류의 종교적인 고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으로의 위험을 생각하여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했습니다. 한때 이 권리는 로마의 주권을 가진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형태를 띠었었으나 나중에는 시민들의 주권이 황제에게 위임되었습니다. 황제는 직접 그 사건을 심리하거나 국가의 고위 관리에게 그의 법적 권리를 위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의 법정에서는 베스도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지역적인 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가이사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그가 여러 속주들을 다니며 로마법의 공명정대함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가이사 앞에 선다면 제국 권력의 심장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이제 이 문제를 가이사에게로 가져갈 수 있었기에 조금은 안심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로마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a. 복음 전파(고후4:5)
b. 평판을 좇는 인간(엡6:6)

2. 베스도를 방문한 아그립바와 버니게

1) 아그립바와 베스도
베스도가 바울을 심문한 직후 헤롯 아그립바 2세와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베스도를 방문하여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것을 축하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2세로, 헤롯 아그릴바 1세의 아들이며 헤롯의 장손입니다. 당시 그는 약 30세의 나이로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팔레스타인 북동부를 다스렸습니다. 그의 배경에는 바울을 심문할 특별한 자격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 종교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사건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문이 있었으나 마침 도움이 될 사람이 찾아와서 그에게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인사를 나눈 후 베스도는 아그립바 같은 유대교 전문가야말로 이 소송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서 바울에 관한 문제를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아그립바는 즉시 흥미를 느끼고 직접 바울을 만날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베스도는 기꺼이 동의했고, 심문을 공개 질의의 형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 아그립바 앞의 바울(행9:15)
b. 호기심(눅9:9)

2) 베스도의 개정연설
다음날 총독과 그의 손님들은 군대의 고위 장교들과 가이사랴의 지도자들이 배석한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왕 아그립바와 그의 누이 버니게는 이 사건을 자기들의 지위와 의복과 의식을 전시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누가는 아그립바와 버니게 그리고 고위 관리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회견실에 있는 비천한 죄수 바울을 대조시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마침내 바울이 그들 앞으로 불려 왔습니다. 총독은 바울을 소개하고 그의 소송건을 요약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에게 유대인들이 바울 죽이기를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이미 바울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벨릭스가 그랬던 것과 같이 베스도도 바울은 죽을 죄를 범한 일이 없음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베스도에게 고민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바울을 고소할 만한 확실한 내용이 없이 가이사에게 보내는 일이 베스도에게는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를 잘 아는 아그립바 왕과 의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이번 심문을 통해서 가이사에게 보낼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특히 아그립바 앞에 세워서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a. 심문(마27:2)
b. 과시(사39:2)

결론
바울에게 죽음의 위협은 끊임이 없는 듯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바울에게 죄가 없음이 발견되어졌고 바울 자신도 담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힘있게 선포했는지 우리는 잘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반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채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의 유대인들이 바로 그 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바울에게 담대함을 주시고 마침내 로마로 가는 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단어 해설

2절. 고소할새. 원어 <ejnefavnisan:파레칼룬>?도움을 요청하거나, 초대할 때, 불러 모을 때 등에 사용되었다.

3절. 죽이고자. '치워버리다, 없애버리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살인 모의를 나타낸다.

7절. 능히. '강한, 강력한'이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송사할 증거를 대지 못한 것은 그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11절. 호소하노라. 원어 <ejpikalou'mai:에피칼루뗌?는 '소리쳐 구하다, 호소하다'라는 의미로 억울한 상황에 빠진 자가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상태를 말한다.

19절. 죽은. 원어 <teqnhkovto":테드네 코토스>는 신과 대조되는 인간의 운명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어 졌다. 따라서 이 말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대표적인 인간의 속성을 나타낸다.

24절. 외치되. 원어 <bow'nte":보온테스>는 '기뻐 날뛰다, 항의를 발하다, 부르짖다'라는 뜻으로 궁핍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뜻할 때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도 이 단어로 표현하였다.

25절. 죽일. '죽음'을 뜻하며 생명이 멸하는 것을 나타내는데, 보통 자연적인 현상으로서의 죽음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신학 주제

베스도의 아그립바에 대한 자문 요청. 아그립바는 마지막 유다 왕으로서 비록 부도덕한 인물로 악명 높았으나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유대교 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유력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황제에게 상소하는 죄수를 보낼 때는 사건의 전모와 그의 죄목을 기록한 서류를 함께 보내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베스도는 유대인의 풍습이나 신앙 등에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아그립바와 상의하여 황제에게 올릴 조서를 작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본문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저자의 기록의도는 고관들의 대화를 통하여 바울의 무죄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선동죄, 이단죄, 성전 모독죄라는 죄목을 내세워 베스도로 하여금 사울을 사형에 처할 것을 요청했으나 베스도는 바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없었으며, 단지 종교적인 견해차가 문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비록 부활에 대해 무지한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의 전통에 충실한 아그립바 왕보다 하나님의 섭리에 더 직접적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예이다.

영적 교훈

바울을 핍박한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했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의 부활은 그의 신앙의 전부로서 이미 성취된 사건이요 실재였다. 만약 예수의 부활에 대한 그러한 신앙이 없었다면 그는 계속되는 고난과 신문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부활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소유함으로써, 능력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